고양이는 영역동물입니다.
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두 개다.
사주라는 걸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내 삶을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나는 살면서 총 스물세 번의 이사를 했다.
고향 안에서도 구를 옮겨 다녔고,
성인이 된 뒤에는 지역을 이리저리 옮겼다.
경기도, 서울, 대구, 창녕.
한 곳에 제대로 정착해 본 기억이 없었다.
내가 이사를 하지 않는 해에는
장거리 연애를 했고,
그마저도 아니면 회사가 이사를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내가 입사하고 나서 25년만에 이사를 했다.
퇴사했다 재입사했더니, 1년 반 만에 또 옮겼다.
이쯤 되니,
우연이라고 보기엔 조금 과했다.
어쨌거나 이렇다보니
나는 늘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지만,
정작 발은 닿아 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흐르는 강물 위에 떠 있는 나무처럼,
방향은 있지만 뿌리는 없는 그런 상태.
그런데 빵순이는 달랐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다.
환경이 바뀌면 스트레스를 받고,
낯선 곳에서는 숨기 바쁘고,
심하면 밥도 끊는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빵순이는, 아니었다.
처음 이사를 갈 때,
나는 엄청 긴장했다.
빵순이가 괜찮을까.
혹시 스트레스로 아프진 않을까.
또 식음을 전폐하진 않을까.
걱정이 무색하게,
빵순이는 완전히 괜찮았다.
시끌벅적 요란하게 짐을 싸는 동안에도,
그리고 짐을 싣는 동안,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좁은 방에 갇혀 있을 때에도 괜찮았다.
새로운 집에 도착하면,
짐을 정리하기도 전에
집 안을 한 바퀴 쓱 훑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가 있을 자리를 정했다.
가장 먼저 내가 마련해 준 곳에 앉아,
내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정리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치 원래부터 거기 살던 애처럼 굴었다.
그런 빵순이 덕분에, 업둥이들도
아주 빠르게 새 집에 적응했다.
어마어마한 횟수의 이사와 더불어,
심지어 나는 빵순이를 위탁해야 할 일도 있었다.
자아실현이라는 원대한 이유로
나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모든 걸 다 데리고 움직이기엔
현실이 허락하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에게 빵순이를 맡겼다.
그에게 넓은 집을 구해주고,
나는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땐, 최선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도 아니고, 그도 아니었다.
빵순이였다.
가장 먼저 믿을 수 있는 언니들에게 연락했다.
당시 나는 면허도, 차도 없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정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연락도 없이 방문한 나로 인해
남자는 많이 놀란 눈치였다.
대화를 위해 그와 카페로 향했다.
그와 얘기 중일 때, 언니들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우당탕탕, 사료와 밥그릇, 빵순이의 애착 방석을
정신없이 챙기고 빵순이를 보쌈하 듯 들고 나갔다.
빵순이는 상황을 모르는 얼굴로
언니를 한 번 쳐다본 게 다였다.
그 당시엔 데이트폭력, 이별살인으로 시끄러웠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무서웠다.
빵순이에게도, 내게도.
하지만 그냥 놔둘 순 없었다.
빵순이는 그렇게 납치된 채로
언니의 집으로 향했고, 맡겨졌다.
나는 바로 빵순이를
데리러 갈 수 없었다.
집을 정리해야 했고,
살 곳을 다시 구해야 했다.
그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건,
너무도 복잡하고 일이 많았다.
모든 게 엉켜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빵순이는 괜찮았다.
언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빵순이는
그 집의 고양이들을 훑어봤고,
조용히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냥, 지냈다.
이렇든 저렇든,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면 된다는 얼굴로.
백밤만 자면 데리러 올게.
그 말을, 의심 없이 믿는 아이처럼.
내가 없는 동안에도 밥을 먹었고, 잠을 잤고,
가끔은 TV를 보다가 이승기가 나오면 멈춰서 봤다고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겨우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언니가 먼 길을 달려 빵순이를 데려다줬다.
사람에게도 긴 시간이었고,
동물에게는 더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빵순이는 나를 보자마자
어제 본 사람처럼 굴었다.
반가워서 미친 듯이 달려오지도 않았고,
서운하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내 옆에 와 앉았다.
그 순간 알았다.
빵순이는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본인 초상 외 출근.”
내가 죽어서 내 초상을 치르는 게 아니라면,
해야 할 일은 한다는 뜻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는 쪽이었다.
빵순이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집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어도,
환경이 뒤집혀도,
이 아이에게 중요한 건
오직 하나였다.
나.
그제야 이해가 됐다.
왜 이 아이는
그 많은 이사에도 흔들리지 않았는지.
왜 낯선 집에서도 불안해하지 않았는지.
빵순이에게 ‘집’은
공간이 아니라, 나였다.
나는 늘 떠돌았지만,
빵순이는 단 한 번도 떠돌지 않았다.
나는 집을 옮겼지만,
빵순이는 단 한 번도 집을 잃지 않았다.
덕분에 나의 생각은 좀 달라졌다.
머무르는 법은 꼭 거처에 한정되지 않음을.
너의 집이 나였 듯,
나의 집은 너인 것처럼.
그래서 나의 공허함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빵순이는 확신이었다.
불안은,
그 앞에서 조용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