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길 작가의 <음복> 책리뷰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시댁에 인사드리러 가는 날.
시댁에 한복을 입고 가야 한다고 누군가 말해 줬나, 아니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나, 그것도 아니면 시어머니께서 그렇게 하라고 했나. 벌써 십몇 년이 지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속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 도착한 경상남도의 소도시. '이제 명절마다 이 곳에 오겠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화장실 가서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사실 한복은 정말 입기 싫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시선들. 형광빛이 도는 화려한 색의 한복을 입은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은 인상을 썼던 것 같다) 서둘러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시댁에 가니 생전 처음 보는 시댁 친척들이 가득 차 있었다. 모두들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반겼지만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다. 갑자기 시어머니와 다른 몇 명의 여자분들이 나를 안방으로 데리고 갔다. 남편과의 분리불안을 느끼며 안방으로 들어서니 방 한쪽에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시할아버지와 시할어머니로 추정되는 흑백 사진이 놓여 있었고 그 앞에는 수많은 음식이 놓여 있었다. 맞은편에는 방석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곳이 나의 자리였다. 잠시만 기다리라며 나간 여자분들은 조금 후 밥상을 들고 오셨다. 내 앞에 밥상을 놓더니 여기에서 혼자 밥을 먹으라고 했다. 그리곤 문을 닫고 나갔다.(그쪽 지방의 풍습이라고 한다)
'뭐지? 지금 2000년대 맞아? 무슨 사극 찍는 것도 아니고'
밥상에서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흑백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정면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극에다가 스릴러네'
그날의 그 순간은 십 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생생하다. 시부모님 안방에서 처음 뵙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흑백 사진을 마주 보고 홀로 한복 입고 앉아 배고프지도 않은데 밥을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화려한 한복 입고 혼자(또는 시할아버지 시할머니와) 즐기는 만찬. 그때 나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알았다. 이게 시댁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나를 위한 특별 이벤트라는 것을.
강화길 작가의 <음복>은 주인공이 결혼하고 처음 경험한 시댁 제삿날 이야기이다. 내가 시댁에서 제사를 지낼 때마다 느낀 묘한 감정과 분위기가 이 소설에 잘 나타나 있었다. 내가 '여자라는 성별을 가졌구나' 매번 인지하게 된다든가, 시댁에만 가면 무신경하고 눈치 없고 TV만 보고 있고 잠에 취해 있는 남편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가 된다든가,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제사 준비에 열심이실까 이해가 안 되다가도 바쁜 와중에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따로 준비하고 계시는 시어머님을 봤을 때 느끼는 짠함이라든가. 그 외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소설 안에 담겨 있었다.
'무지라는 권력'(오은교, 작품 해설 중)
이 표현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무지도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것.
천진난만하고 해맑기만 아이 같은 사람. 그리고 그걸 유지할 수 있게 좋은 것만 바라보게 하고픈 그 누군가의 마음. 무지라는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보이는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모든 걸 알게 해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다가도 '됐다' 해 버리는 사람.
누가 더 큰 권력을 갖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악역을 맞고 있는가. 무지라는 권력을 유지시켜 주는 사람? 무지라는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이 둘은 천지 차이일 수도 있고 종이 한 장 차이일 수도 있다. 내가 보는 세상이 바뀔 수도 있고 예전과 같을 수도 있다. 권력을 유지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다. 그저 선택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