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12-16
20250127.월 / 눅 6:12-16
> 묵상
나병 든 환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리고 예수님이 그의 나병이 떠나게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사람들이 아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인 후 입증하라고 하신다.
소문이 퍼지고 군중은 더 많아졌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물러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다.
‘…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나병이 곧 떠나니라 (12,13)’
나병 든 환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리고 예수님이 원하시면 자신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신다.
나병환자와 예수님의 원함의 일치와 나병이 떠났다는 표현이 남는다.
나병환자는 자신의 나병이 힘들었고 깨끗해 지길 원했던 것처럼 각자가 느끼는 삶에서 변화되고 싶은 영역이 있는 거 같다.
그런 영역을 가지고 주님께 나가기도 하지만 쉽게 변화되길 바라는 대상이 생기고 시선이 거기로 가게 된다.
부목자지만 목장보고서는 밀리고 핸드폰은 하루종일 하지만 말씀은 안보는 남편. 그런 남편을 변화시켜 달라고 하지만 아무리 외쳐도 변화가 없다.
왜 나병도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이 남편은 안변화 시켜 주는 것일까?
나의 원함과 예수님의 원함은 일치하지 않는 건지 일치하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닌 건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치유하셨고 나병이 떠났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태근 목사님이 심방오셔서 사과할 수 밖에 없는 판을 짜주셨고 그 위에서 남편은 수동적 사과를 했다.
그러나 사과 하기 이전과 이후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상황은 그대로이고 큰 아이와 남편의 관계도 비슷하다.
그렇지만 ‘나병이 곧 떠났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거 같다.
상황도 환경도 비슷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매여 두려워하고 있는 시선과 그로 인해 생기는 생각 따라서 연결되는 태도들이
말씀 안에 머물고 내 죄를 깨닫게 하시면 ‘떠난 것’이 된다.
긴 시간이 아니고 짧은 순간 순간들이고 또 몇 일 있다 무너져서 여전히 남편이 인정이 안되고
무시되는 순간이 많지만 나병환자가 고침 받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에게 먼저 보여야 했듯이
‘내가 이러했는데 말씀이 들렸고 회개가 되더라 몇 일간 잠잠했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잘 안된다.’와 같은 것들을
가서 보일곳과 대상인 공동체가 내게 있다.
여전히 안되는 우리지만 내가 안될 때 누군가가 될 때가 있고 누군가가 안될 때 내가 될 때도 있고,
내가 기도를 쉴 때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기도 하고
그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는 서로 다른 때에 머무르며 각자의 것을 나누고 그러면 그 자리에서 성령의 은혜로 힘을 받는다.
물론 어느 날은 너무 듣기 싫은 미친소리 같은 소리를 듣는 시기와 날들도 있지만
죽을 거 같은 꾸지람을 듣고서 그저 붙어만 있으면 웃는 날도 있고 그렇다.
그러니 내가 지금 힘든 나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해야 할 대상은 남편이 아니라 예수님이다.
예수님께 나가 엎드려야 하고, 가야 할 공동체에 나가 떠난 것과 떠나지 않은 것들을 나눠야 하며, 무리 중에서 울고 웃다가도 물러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 아닐까?
> 삶
요즘 가족들이 잠잠한 편이고 남편과 사이도 좋은 편인데 이런 날일수록 깨어 말씀부터 보고 하루를 열겠습니다.
부부큐티 나눔의 날이니 남편과 큐티나눔 하고 혼자 기도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 기도
주님, 우리의 나병을 고쳐 줄 이는 예수님 이신데 저는 남편이 고쳐야지, 자녀가 고쳐야지 하면서 엉뚱한 것에 조공을 바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바늘처럼 작은 죄가 드러나지 못하니 커지고 커져 가정을 우상삼고 남편을 아세라 목상삼아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고 있었던 저를 불쌍히 여기사 이제는 시선이 저와 하나님께 오래 머물릴 기도합니다. 되는 때도 되지 않는 때도 가서 보일 공동체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붙어만 있었더니 웃으면서 부부목장에 나갈 날도 오게 하심에 그또한 감사합니다. 또다시 힘든 날이 있어도 잘 붙어가게 성령님 절 붙잡아 주시고 무리 중에서 즐거운 때일수록 깨어 기도함을 잊지 않는 자가 되게 절 인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