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핫 엄마랑 또 물건 던지면서 싸우고 말았네”
무열이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카톡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보냈을 때 나영은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카톡창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햇살이 들어오는 건조한 사무실, 점심시간을 앞뒀을 때였다. 평소 연락도 자주 안 하는 오빠의 갑자스러운 메시지에 영의 마음은 쏟아지는 가을 햇살과는 다르게 검게 멍이 드는 것만 같았다. 할 말을 찾아 눈꺼풀을 깜박이는 동안 그가 이중인격은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가 머리를 휘저었다. 나영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싸운 상대가 누군지 알면서도 되물으면서 할 말을 골라냈다.
“엄마랑??”
나영에게 있어 무열은 늘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나영은 그럴 때마다 최대한 아는 한에서 현명한 대답을 골라 조언을 해주었다. 그가 여자 친구와 다퉈 고민할 때도, 회사에서 사이가 안 좋은 동료와 갈등을 겪을 때도 그녀는 옆에서 묵묵히 이야기를 듣다가 그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에게 건넬 말을 떠올리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할 수 있는 조언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는지 메시지를 보내기 전부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무열은 엄마가 먼저 전화해서 자신의 기분을 망쳤다고 했다.
“아침부터 전화해서 카카오페이 공모주가 계좌에 하나 남아 있다고 3주 전부 팔았으면 30만원은 벌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손해 봤다면서 기분 나쁘게 말하는 거야”
무열은 전날 여자 친구네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영애은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7시쯤 일어나 아침 식사를 무열비하며 경제 뉴스를 듣고,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지난주, 무열에게 부탁해 카카오페이 공모주를 매도했다고 기쁜 목소리로 전화했던 밤을 나영은 기억했다. 월요일 아침, 계좌로 입금된 금액을 확인하기 위해 계좌 잔고를 들여다봤을 때 한 주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가득 격양된 목소리로 무열에게 전화를 걸었으리라.
다짜고짜 아침부터 전화해 왜 한주가 남아있느냐며 아들에게 따져 물었을 엄마 영애. 그녀는 돈에 관한 일이라면 누구보다 빨리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갔다.
엄마가 돈 벌게 도와주고도 욕을 먹는 꼴이라니. 무열은 그렇게 말했다. 사람 기분을 망쳤으니 무열은 엄마에게 사과하라고 했고, 엄마 영애은 그럴 때마다 극단적으로 말했다. 앞으로 네 일은 하나도 안 도와줄 테니까, 너도 도와달라는 소리 하지 말라며 화를 돋웠다고 무열은 덧붙였다. 그래서 물건을 던지면서 싸우고 말았다고, 무열은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듯 엄마가 얼마나 화나게끔 만들었는지에 대해 대화창 가득 늘어놓았다.
나영은 머릿속으로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목소리로 엄마 영애에게 신경질 가득한 말을 쏟아냈을지 쉽게 그릴 수 있었다. 오빠 무열이 가족들하고 싸울 때면 눈빛이 돌변하는 것을 나영은 자주 목격했다. 그 상대는 나영 자신일 때도 있었고, 이모의 강아지 콩이일 때도, 이모일 때도, 이모부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영은 자신이 혼자 떨어져 자취하는 일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가족의 그런 추한 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까. 자취한 곳과 본가, 두 도시 사이에 거리가 나영에게 때로 창문에 붙이는 뽁뽁이같은 역할을 했다. 말랑한 동시에 충격을 반감시켜주는, 그 뽁뽁이를 창가에 붙여 밖을 바라보면 세상이 불투명해 보이는 것처럼 그 불분명함이 영에게 어떤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무열을 볼 때마다 나영은 형용할 수 없는 실망감을 느꼈다. 무열에게 그건 폭력이라고 누누이 말했음에도 얼마 뒤 싸움에는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네가 또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구나. 나영은 그런 생각을 했다.
나영은 마음속의 말을 꺼내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그가 나영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생채기를 냈듯, 영도 그에게 꼭 같은 타격감으로, 날 선 말로 상처를 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럼에도 나영은 마음속에 담긴 그런 말을 무열 앞에서 솔직하게 꺼낼 수 없었다. 무열 역시도 나영이 아끼는 사람이었으니까. 나영은 화가 난 무열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하는 동생의 역할과, 무열이 엄마 영애에게 주었을 상처를 바라보는 딸의 역할 중 어떤 것을 우선에 두어야 할지 몰라 복잡한 마음이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을 다리의 양 끝에 두고,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야 할지 모른 채 다리 위를 아슬아슬 걷는 기분이었다.
나영은 우선 오빠, 무열에게 가족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고 제안했다. 본가에 들를 때마다 한 주가 멀다 하고 가족들끼리 싸워왔기에 나영은 가족 심리 상담을 권했다. 그리고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선 오빠 무열이 따로 방을 얻는 게 방법일 거라고 권했는데, 무열도 집을 알아보고, 심리 상담을 예약해야겠다며 대화를 마쳤다. 나영은 무열과의 대화방을 빠져나오자마자, 온라인을 통해 심리학 책을 뒤적거렸다. 어떤 상황에서 무열이 자꾸만 걸려 넘어지는 건지, 어떤 것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사랑하는 가족에게까지 이를 드러내는 건지 나영은 알고 싶었다.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 나영은 엄마 영애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 전화를 걸었다. 영애는 가족들과 싸우고 나면, 상처 받은 감정을 짜증으로 치환하곤 했다. 평소 딸 영과 통화할 때면 어김없이 늘 같은 톤으로 "사랑하는 공주~ 어디신가?"하고 인사를 건네곤 했는데, 영애는 그날의 감정을 반영하듯 나영에게도 새침하게 굴었다. 나영이 오빠 무열이 그렇게 밖에 화낼 수 없는 배경을 설명하려는 말만 해도, 영애의 말투에는 날이 잔뜩 섰다. 그러면서도 싸운 뒤 오빠가 어떤지 궁금하긴 한 모양인지 "그래서 너네 오빠는 뭐래?" 하면서 무열의 상태를 나영에게 물었다.
무열은 싸운 날로부터 이틀 동안 집을 비웠다. 여자 친구네에서 이틀을 지냈다고 했다. 영애와 붙어있으면서 서로 달달 볶아 얼룩졌던 마음에도 거리가 필요했으리라. 그리고 하루는 심리 상담을 다녀왔고, 다른 날은 방을 구해보려 이곳저곳 부동산을 다니며 살 집을 알아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영에게 "엄마는 뭐래?"하고 물으며 엄마의 감정을 살폈다. 집으로 돌아와선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며 사과했고, 그 사이 화가 풀린 엄마 영애와 화해했다고 말을 전했다.
결국, 무열은 집을 나가지 않기로 했다. 집값을 알아보니 아무래도 엄마와 사는 게 경제적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대신 무열은 12회에 100만원 어치의 심리 상담을 끊었다. 나영은 그의 과감함에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백이라는 숫자에 무열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뒤엉킨 감정의 실마리를 찾아 나서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수요일은 무열이 심리상담을 다녀오는 날이었다. 그날마다 나영은 무열에게 오늘은 어떤 질문을 했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물었다. 영이 회사로 인한 우울증을 앓던 시기에 받았던 심리 상담이 얼마나 그녀 스스로에게 큰 힘이 되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무열은 선생님께 최근에 싸운 이야기부터 시작해 유년시절과, 아버지의 죽음 등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했고, 선생님께서 이것저것 물어봐주니 재밌었다고 했다. 나영은 무열과 비슷한 심리 치료 사례를 공유하며, 무열과 비슷한 결의 불안을 겪었던 이들이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 알려주었다.
이후, 한 주씩 수요일이 지나갈수록 무열의 얼굴에선 불안이나 우울 같은 감정의 그늘이 조금씩 사라졌다. 무열은 조금 더 쾌활해졌고, 가족들과 싸움은 사라진 듯했다. 얼마 뒤, 무열과 엄마 영애, 영 셋이서 주말을 함께 보낼 때였다. 무열이 티브이 속 인물을 보면서 "ㅇㅇ(여자 일반인)이 너무 예쁘다..", "ㅇㅇ(여자 가수)은 어떻게 저렇게 예쁘지?"라며 가감 없는 외모 지상적인 감탄사를 쏟아냈다. 옆에서 안마기로 마사지를 하던 나영은 무열에게 "그런 말 좀 그만하면 안 돼?"하고 말했다. 무열은 "왜? 진짜 예뻐서 예쁘다고 하는데" 하고 답했지만, 조금 있자 거실로 저벅저벅 걸어와 영애에게 안마기로 마사지를 해주던 나영 앞에 섰다.
오빠 무열은 "아까 네가 한 얘기 말인데.." 큰 눈을 불안한 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문을 뗐다. 나영은 이런 대화 끝에 늘 무열이 일방적으로 화를 쏟아내며 싸웠던 기억 때문에 긴장했다. 나영은 마음속으로 또 시작이구나 싶어 눈을 깜빡이며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영애에게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런데 이번엔 무언가 달랐다. 무열은 영의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최대한 너의 기분이상하지 않았으면 해서 조심하고 있다고, 지금 얘기하고 싶다면 얘기하고, 불편하다면 내일 하자고 했다. 나영은 무열에게 "오빠가 옆에서 티브이 보는 내내 그런 말을 해서 듣기 불편했어"라고 하며 그런 말을 했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윽고 무열은 자기도 모르게 그랬던 것 같다며, "오해였으니 다행이다"하고 웃으며 다시금 느긋하게 티브이 앞에 앉았다. 무열은 자신도 허리가 아프다며 엄마 영애에게 마사지를 해달라며 모로 누웠다. 나영은 달라진 무열의 모습이 신기해 속으로 놀라면서도 이전에 불같이 화를 냈던 무열이 떠올라 눈물을 찔끔 머금었다. 영애는 누워있는 무열의 허리에 마사지를 해주었고, 그 모습을 나영은 곁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Covoer Photo by Charl Folsch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