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구수보다 많은 6773만 명에게 보내는 메시지
스파이더맨 주인공 톰 홀랜드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대한민국 인구수보다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연 그는 자신의 피드에 3분가량의 짧은 동영상을 업로드하며 인스타그램 중단을 선언합니다. 내용에는 SNS에 떠도는 자신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정신이 혼란해지며, 이는 정신 상태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0대 청소년의 정신 건강 회복을 돕는 'stem4'라는 단체의 지지의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글은 톰 홀랜드의 SNS 이야기에서 출발해 디지털 환경과 어떻게 하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목차>
실리콘 밸리 구루들의 경고
청소년 시절 뇌와 포모증후군
디지털 기기 제한 가이드
월도프 학교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
빌 게이츠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IT기기 사용을 제한시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만 14세가 될 때까지 휴대폰을 장만해 주지 않고, 식사 테이블에는 휴대폰을 올려놓을 수 없다고 합니다. 구글의 CEO 순다 피차이는 한 술 더 떠 아이들이 TV 보는 시간을 정해놓고 엄격히 통제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아이패드가 출시됐을 때 자녀들에게 사용을 금지했다는 사실을 한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스냅챗의 창업자 에반 스피겔 역시 일주일에 1시간 30분 정도만 아이들에게 TV 시청을 허락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실리콘밸리의 수많은 구루들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과 디지털 기기들을 직접 만든 장본인들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오네요.
인간의 청소년 시절 뇌는 아직 미성숙 상태입니다. 특히 눈앞의 사안을 신중하게 고민하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성숙한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영역인 전두엽은 뇌의 다른 영역에 비해 더디게 성장합니다. 중독적인 디지털 경험은 즐겁고 자극적인 대상을 컨트롤하기 힘든 청소년기의 뇌를 민감하고 감정적인 상태로 만듭니다. 성인인 우리들 역시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갑자기 친한 친구가 SNS에서 나를 태그 했다는 알람을 쉽게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청소년들은 아마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기 더 어려울지 모릅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중심으로 진화해왔고, 어떤 정보에서 자신만 소외되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감정을 “포모증후군(Fear Of Missing Out)”이라고 합니다.
친구가 주말에 어떤 맛집을 갔는지, 내가 팔로우하는 셀럽이 어젯밤에 어떤 정보를 공유했는지 등이 모두 포모증후군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사춘기 시절 뇌가 포모 같은 디지털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어떤 사안에 관해 깊이 생각한 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이 성인이 돼서도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합니다.
많은 디지털 전문가들은 SNS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가장 큰 이유를 포모증후군에서 찾기도 합니다. SNS에서의 타인의 인정은 리얼월드와 달리 무한한 도파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 아닐까요? 톰 홀랜드가 과거 자신의 실제 삶보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더 소중히 가꾼 시절을 회고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자꾸 맴돕니다.
2019년도에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4세 어린이가 스마트폰을 1시간 이상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더불어 1세 이하 영아들은 아예 디지털 기기에 노출되는 상황 자체를 제한합니다.
프랑스는 현재 15세 이하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가지고 등교를 할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이러한 제약을 통해 청소년들의 스크린 중독과 유해 정보 접근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와 가까운 대만 역시 2세 이하 영아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시켰고 18세 미만 청소년이 과도하게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시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법을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고연봉의 개발자 학부모들이 모여 사는 실리콘밸리 역시 대체로 자녀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반대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에서 실리콘밸리 고연봉 학부모를 둔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를 조사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어요. 디지털 기술과 디바이스를 완전히 배제한 수업을 하는 월도프(Waldorf)라는 학교가 높은 순위에 있었습니다. 이 학교의 고등학교 등록금은 한국돈으로 약 4500만 원 정도 될 만큼 비싸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바로 옆의 디지털 친화적인 학교들의 등록금은 월도프에 비하면 무척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해당 학교들은 종이책을 대신해 아이패드를 활용하고 줌으로 수업을 합니다.
월도프의 존재를 알기 전 실리콘밸리 종사자들이라면 더 기술친화적인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 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월도프는 자신들의 공식 홈페이지에 오늘날 디지털 기술이 아이들의 집중시간을 단축시키고 쉽게 산만해지는 세대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단순히 기술과 기술이 아닌 것의 이분법에서 탈피해 자연을 중심으로 개인과 세계가 맺는 관계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학습이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사이트를 탐색해보면 아이들은 모든 과정을 태블릿이 아닌 종이책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고 친구들과 함께 춤추며 나무를 오르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나를 받아들이려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인간적인 것을 쫓아야 한다는 월도프의 철학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도구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보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이라고 나옵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편하게 관리하고 친구와 일상을 공유하기 위한 도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은 그 자체로 자극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에 목적을 금세 망각하게 됩니다. 도구가 더 이상 도구가 아니게 되는 것이죠.
어쩌면 괴물이 되어버린 인스타그램을 리셋 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월도프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스파이더맨은 왜 인스타그램을 삭제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