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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Mar 14. 2024

마케팅 언어를 어떻게 관성에서 구출할 수 있을까?

언어적 관성이 소비자 결정에 미치는 영향

눈을 감고 해변을 떠올려봅시다.

넘실대는 푸른 파도, 새하얀 백사장, 솜사탕 같은 구름, 형형색색의 파라솔

저는 해변이라는 단어를 듣고 1초도 안돼 위와 같은 이미지들이 자동으로 떠올랐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나요?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 예상합니다.

중국 랴오닝성 판진시의 '붉은 해변' @에버그린 블로그

위 이미지는 중국에 있는 붉은 해변입니다. 붉은 해변이 된 이유는 '바다갈대'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갈대가 녹색이지만 가을이 되면 알칼리성 염류토양과 만나 붉은색이 됩니다.


혹시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붉은 해변‘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나요? 언어에 붙은 관성은 대상을 너무나 강력하고 협소하게 고정시켜 버립니다. 생각해 보면 소금해변, 검은색 해변등도 존재하는데 말이죠.


만약 여러분이 판진시 공무원이고 관광객 유치를 위해 붉은 해변을 외국 사람들에게 홍보해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과정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한 '해변'이라는 강력한 언어의 관성을 효과적으로 대체할 방법을 찾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에 깊게 녹아든 관성은 때때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완전히 다르게 작용해 비즈니스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혁신적인 비즈니스일수록 피하기 힘든 언어의 관성

언어의 관성은 특히 기존 시장을 혁신하려는 스타트업이 종종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다음은 스퀘어 창업자 짐 매켈비가 쓴 언카피어블이라는 책의 한 대목입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초창기에 직면한 위험은 '항공'이라는 말 자체였다. 당시에는 '항공'이라는 말이 특권층의 값비싼 이동 수단을 연상시켰다.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사람들은 비행기를 탈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사실을 떠올릴 터였다. 사우스웨스트는 이 선입견과 싸우기 위해 고객과의 모든 의사소통 상황에서 항공이라는 말에 '저가'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 언카피어블 244p

당시 항공하면 특권층의 전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이러한 관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저가'라는 단어를 붙여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현재까지도 저비용 정책을 유지 중이다. @airtravelinfo


저 역시 과거 재직했던 신선식재료 브랜드에서 유사한 문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해당 브랜드는 축산업의 유통과정을 혁신해 '초신선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새벽 배송 같은 서비스가 등장하기 전이라 온라인에서 유통하는 돼지고기, 달걀 같은 상품들은 신선함보다 대량상품 이미지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브랜드의 로고가 대량상품을 취급하는 다른 축산 서비스들과 유사한 컬러와 한자로 디자인되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기에는 기존 축산 브랜드 느낌이 로고에서 느껴지는 상태였습니다.


입사 당시 브랜드 로고 @정육각


이후 몇 달에 걸쳐 브랜드의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진행했습니다. 브랜드는 축산업에 속했지만 '초신선'과 'IT를 베이스로 한다'는 가치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갈색과 한자를 브랜딩에서 과감히 빼고, Uber나 Lyft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에서 사용하는 라인과 아이콘을 브랜드의 로고와 비주얼 시스템으로 가져갔습니다. 이후 리브랜딩은 잘 안착해 브랜드가 기존 축산업과 다른 가치를 지향한다는 것을 고객들은 시각적으로 먼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새롭게 리브랜딩 된 패키지 @정육각


코카 콜라하면 떠오르는 과도한 설탕과 치아에 좋지 않은 이미지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을 위한 '제로'라인은 대표적인 관성 제거에 성공한 사례입니다. 코카콜라는 제로 슈가 리브랜딩을 위해 1천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비용을 투자했고, 이전해 같은 시기에 비해 약 25% 매출을 상승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코카콜라는 몸에 마냥 좋지 않은 브랜드 이미지를 벗고 건강 추세에 부합하는 이미지까지 가져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카콜라



다양한 사례들

언어와 관성의 문제는 때로는 비즈니스 문제의 키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더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던킨

때로는 브랜드 자신이 쌓아놓은 헤리티지가 관성이 되어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습니다. 던킨 도너츠가 대표적인데요, 브랜드가 도넛에 국한되는 것을 막고 시대가 추구하는 것을 따라가기 위해 'Dunkin'으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이후 커피나 음료, 베이커리등 다양한 품목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던킨의 가장 큰 동력인 도넛을 약화시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2019년 기준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2.5%(3억 5900만 달러) 매출이 늘었고, 미국 내 매출은 5.8%(1억 6600만 달러)가 늘어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TODAY


미니거상술

안면거상술은 대표적인 동안성형 수술이지만 수면마취 후 피부를 절개해 당긴다는 공포심이 강합니다. 하지만 살짝 처진 것이 콤플렉스인 사람에게는 이 정도의 대대적인 수술은 필요 없습니다.


이때는 피부를 살짝만 올려도 효과가 있을 수 있는데 '거상술'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가 환자에게 너무 과도할 수 있습니다. '미니거상술'은 거상술이 가지는 심리적 두려움을 완화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유봄성형외과


웜그레인 샐러드: 따뜻하게 먹는 샐러드?

저는 온라인에서 샐러드를 주문하고 타이밍을 놓쳐 상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웜그레인 샐러드는 따뜻하게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샐러드입니다.


“따뜻하게 먹는 샐러드? 전자레인지 3분 완성 슈퍼곡물샐러드”라는 제목으로 차가운 샐러드의 관성을 깨고 있습니다. 부제목에서는 샐러드도 1년 장기보관이 가능하다는 가치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웜그레인 샐러드@와디즈


지금까지 언어에 붙은 관성과 비즈니스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새로운 가치는 만들기만 해서는 소비자에게 전달이 어렵습니다. 어떤 단어와 메시지, 비주얼을 조합해 소비자가 자신이 익히 아는 것과 명백히 다르다는 사실을 전달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새로운 가치는 비로소 그에 맞는 신선함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어떻게 관성에서 꺼낼 수 있을까?'(끝)


<출처>


이전 11화 브랜딩 대신 재구매: 측정가능한 언어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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