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엄태화,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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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은 새로운 시작의 징후다. 새로움이 무너뜨림(해체)을 동반하는 시기가 있는데 누군가는 못마땅하기 마련이다. 한국 영화의 한 세대가 저문다는 생각, 어느 분야든 한 세대의 몰락을 보는 것은 씁쓸하다. 세대 교체가 물리적 나이뿐 아니라 성별도 포함하길 바란다. 독립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작고 다양한 영화 외에 극장을 찾아 본 한국 영화가 드물다. 달라지지 않는다면, <범죄도시3>는 꺼지기 직전의 환한 불꽃처럼 보인다. 가려진 시간도 분명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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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울려 퍼지는 박지후 배우의 노래를 꼭 다 듣고 나설 것, 놀라웠다. 어떤 감독은 영화의 톤 혹은 주제를 음악으로 드러낸다. 엔딩 크레딧 음악에 공 들이는 감독이 꽤 있다. 김해원 음악 감독, <윤희에게>는 음악으로도 기억할 만한 영화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음악 감독이 누구인지 Daum 영화 검색 출연/제작에는 안 나온다. 전작 <가려진 시간>은 수려했다. 감독의 성별은 자주 영화 설정과 전개, 줄거리를 비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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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3차원 공간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카메라를 통해 2차원 화면에 옮기는 작업이다. 빛과 소리의 일이지만 결국 시간과 공간을 다루는 일이다. 전작 <가려진 시간>은 안보이는 시간을 물질적•체험적으로 다루려고 감독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금새 알 수 있다. <가려진 시간>과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닫힌 시•공간 속 세계 내 존재로서 한계에 맞닥뜨린 평범한 인간 군상에 대한 사뭇 진지하고 사려 깊은 질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치 않다.
“책임질 수 없는 질문은 오락에 그친다. 그때 느끼는 재미는 예술이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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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달라도 특별할 것 없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누리는 비교우위•반사이익에 주목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 정도로 감탄할 영화인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면서도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제작비와 규모, 장르의 차이 문제만이 아니다. <비밀의 언덕>•<사랑의 고고학>•<벌새>•<애비규환>•<남매의 여름밤>•<우리집> 감독에게 다음 기회 뿐 아니라, 더 큰 규모와 장르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뼈가 녹아내리는 허기를 아느냐”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 정도로, 그렇게 좋은 영화인가라는 말이다. 최근 한국 영화의 나쁜 점을 얼마간 극복했다고, 배우들의 합이 좋다고, 장점이 조금 있다고, <콘크리트 유토피아>에게 주어지는 찬사가 현재 한국 상업 영화의 교착상태를 보여주는 듯 하다. 엄태화 감독은 이번 영화로 다음을 기약하지 싶다. 우리만 모르고 싶은 사실, 우리는 이미 캐서린 비글로우나 클로이 자오, 그레타 거윅과 셀린 시아마 보유국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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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밍량에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차이밍량은 대답했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 상업 영화이고, 나의 내일을 걱정하면 예술 영화입니다. 그러므로 상업 영화는 항상 책임질 수 없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예술 영화는 자기가 알 수 있는 한계 안에서 그냥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기가 다루려는 테마가 커질수록 그것은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예술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정성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바다출판사, 2010, 454,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