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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Aug 26. 2023

좋은(goo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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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가 갖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정성일이 금과옥조 중 하나로 여기는 차이밍량의 아래 말은 예리하면서도 고맙고 참 소중한 말이다. 


“차이밍량에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차이밍량은 대답했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면 상업 영화이고, 나의 내일을 걱정하면 예술 영화입니다. 그러므로 상업 영화는 항상 책임질 수 없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예술 영화는 자기가 알 수 있는 한계 안에서 그냥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기가 다루려는 테마가 커질수록 그것은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예술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정성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바다출판사, 2010,  454,4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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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가늠자가 되는 인물 혹은 책이 있다. 한 명 혹은 한 권만 고르는 게 쉽지 않지만, 건축은 정기용 선생의 것, 영화는 정성일의 첫 평론집, 미술은 김혜리와 서경식의 것, 산문(에세이)은 (너무 너무 너무 많지만) 조용미의 것, 클래식은 정윤수의 것, 사회학은 김홍중의 것, 과학은 칼 세이건의 것, 철학은 이정우, 김영민의 것, 이런 식이다. 독서는 분야마다 자기 나름의 정전(正典) 목록을 정리하는 과정이지 싶다. 


나름의 정전 목록은 부단한 책 읽기의 결과면서도 헤매고 방황하고 에두른 삶의 흔적이다. 각 분야에서 더 전문적이고 더 산문(일상)적인 것을 왔다갔다하면서, 그 분야에서 학자 혹은 전문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므로, 결국 어떤 지향과 교양인(generalist)으로의 삶의 태도 혹은 글로서의 품격까지 갖춘 저자•책 정도의 목록이 그제서야 생긴다. 큐레이팅 그리고, 가려진 시간의 목록들. 



2

전작들을 보면, 크리스토퍼 놀란은 하고 싶은 이야기(서사)를 구조화해서 전달하는 것으로, 영화(시네마)적인 순간을 펼쳐낸다. 결국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곧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윤리와 정치’에 대한 질문일 수 밖에 없다. 구조적이고 기하학적이면 딱딱할 것이라는 것도 편향 혹은 고정 관념이다. 구조적이고 기하하적인 서사 구축과 연출이, 어떤 경지에 이르면•공을 들이면•시간을 머금으면•사람들이 기운을 모으면, 때로 ‘시적 순간’을 만든다. 


어떤 분야든 그렇(지 싶)다. 놀란은 좋은 질문을 직접하기보다는,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문제 설정을 구축한다. 구조가 메시지일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은 모호해지고 흐릿해진다. 말하지 않는/말 못하는 선택, 놀란은 대단한 재능을 가진 재주꾼(엔터테이너)이다. 그래도 아슬한 그의 영화 어떤 면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를,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수많은 동어반복이 곳곳에서 들린다. 




3

엄태화 감독의 <가려진 시간>을 보면서, 언뜻 그런 기대를 가졌다. 그런 면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잘 만들었지만, 감독의 그런 쪽 개성을 조금 더 밀어 붙이기에는 투입된 자본이 커서 쉽지 않았을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점점 거대한 자본의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 되고 있어 흥미진진하고도 아이러니한 매체가 되었다. 정성일 말처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지, 그 영화가 그런 영화일지, 점점 회의적이다. 그래서 더더욱 작은 영화 혹은 적당한 손익분기점, 다음 기회를 보장하는, 다양한 영화도 많아지면 좋겠다. 영화는 흥행을 건 도박이 아니면 좋겠는데 그런 게 어디 있겠나, 미술이나 음악도 마찬가지, 돈 넣고 돈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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