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답고 잔인한 타인

에메랄드 페넬 감독의 '폭풍의 언덕' 리뷰

by 영화평론가 최재훈
press_still05.jpg 영화 '폭풍의 언덕' 스틸 컷

뿌리를 지키려 하면 현재가 옴짝달싹을 못 하고, 과감히 변주하면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상처받는다. 어떤 예술 창작의 근원이 되는 ‘원작’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의 예술 작품을 다른 예술로 만드는 창작자의 시간은 원작의 시간 위에 자신의 시간을 덧입혀야 한다. 이미 쓰인 이야기와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 사이에서 이 작품이 결국 누구의 이야기인가, 하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원작을 사랑하지만, 자기 작품을 위해 어디까지 훼손할 수 있는지, 예술의 책임과 욕망을 동시에 바라본다.


불편하지만 새로운 인물들

영국 요크셔의 황무지 언덕 위에서 사는 언쇼 가문의 딸 캐서린(마고 로비)과 입양된 히스클리프(제이콥 엘로디)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영혼의 유다를 나누며 사랑하지만, 캐서린은 가문과 계급을 지키기 위해 부유한 이웃 에드거 린튼과 결혼한다. 상처받은 히스클리프는 사라졌다가 부와 권력을 쌓아 다시 캐서린에게 돌아온다.

에메랄드 페넬 감독의 ‘폭풍의 언덕’은 잘 알려진 에밀리 브론테의 동명 고전 소설에서 눈에 띄는 요소인 질투, 욕정, 사랑, 그리고 죽음에의 욕망 등 자극적인 요소들을 건져 올려, 관능적이고 잔인하게 보여주는 멜로 스릴러에 가깝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사이에서 오가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사랑을 묘사하기 위해 낭만 비극을 담은 가족극을 버리고 캐릭터의 성격도 모두 바꿨다. 원작 속 히스클리프는 어두운 피부에 집시처럼 생긴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흑인일 가능성이 있는 이방인으로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여러 영화와 연극에서 흑인 배우가 그를 연기해 왔다.


그러나 텍스트 어느 곳에도 그의 인종이 명시되지는 않는다. 이 모호함은 히스클리프를 인종적으로 분류할 수 없는, 백인 사회가 임의로 규정한 타자로 남겨 둔다. 페넬 감독은 이 지점을 정면으로 수정한다. 영화 속 히스클리프는 더 이상 인종적·계급적 모호함을 둘러싼 타자가 아니다. 그는 잘 가다듬어진 고딕풍의 미장센 속에서, 계급 상승과 캐서린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또 하나의 파괴자일 뿐이다.


원작이 품고 있던 “흑인일 수도 있는 이방인”이라는 불편한 질문은 사라지고, 대신 아무도 지워지지 않는 오늘의 정치적 올바름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과 폭력만이 또렷하게 남는다. 이 선택은 원작의 인종 문제를 비켜 나가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이 시대가 타자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캐릭터의 변화에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 비극의 화자로 등장하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소설 속 넬리는 그 비중을 낮추고 두 사람의 사랑 방해꾼 정도로 등장하는데 베트남계 미국 배우 홍 차우가 역할을 맡았다. 넬리 역할을 동양인으로 변화한 것에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억지로 다양성 캐스팅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캐릭터를 지우고 변화하면서 에밀리 브론테가 소설에서 집요하게 이어 갔던 세대 간 원한과 대물림의 서사는 거의 지워지고, 파국으로 치닫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과 집착이 메인 서사로 압축된다. 브론테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영화 ‘폭풍의 언덕’은 가족 비극을 관능적 밀실극으로 축소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잔인하고 아름다운 폭풍

에메랄드 페넬의 필모그래피는 하나의 키워드로 정리된다. 여성 중심의 복수 서사 ‘프라미싱 영 우먼’, 영국 상류층 저택을 배경으로 한 계급 갈등과 욕망의 서사 ‘솔트번’에서 그는 과할 정도로 아름다운 색감과 세트를 사용해 그 뒤에 폭력과 트라우마, 계급 간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폭풍의 언덕’은 바로 이 스타일의 집대성 같은 영화다. 여성 캐릭터는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라, 복잡하고 위험하며, 종종 가해에 가담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각기 욕망·집착·타락과 계급 상승 욕망에 병적으로 매달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캐서린은 사랑에 의해 무너지는 여성이기보다, 이미 파괴된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소비하는 여자처럼 보인다. 소설 속 캐서린은 나르시시즘과 계급적 욕망이 뒤엉킨, 결코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인물이다. 페넬의 영화 속 캐서린은 마고 로비가 가진 동시대성과 관능이 더해져 로맨틱한 비극의 아이콘으로 다시 설계된다.


브론테의 인물들이 서로를 난도질하듯 내뱉는 폭력적인 언어 대신, 페넬은 시각적 폭력을 전면에 세운다. 카메라는 육체와 공간, 장식과 피로 멍든 피부를 집요하게 응시한다. 소설이 문장으로 흔적을 남겼다면, 영화는 이미지로 관객의 몸에 멍을 들인다.


‘폭풍의 언덕’은 아름답고 섬세하지만, 동시에 불편할 만큼 직설적이다. 고전적 낭만주의와 황야의 서늘한 정서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과도 다른 완전히 새로운 시각적 이야기, 더 뜨겁고 왜곡된 사랑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매혹적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영화가 원작을 완전히 해체해 다른 이야기로 재조립하면서도, 관객을 다시 에밀리 브론테의 텍스트로 되돌려 보낸다는 점이다. 21세기에 ‘폭풍의 언덕’을 처음 만나는 어떤 관객은, 이 영화의 관능과 잔인함을 곱씹다 브론테는 진짜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까 궁금해 하면서 원작 소설을 펼쳐 들 것이다.


원작의 난폭한 문장과 기이한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진짜 폭풍의 언덕을 확인하기 위해서 페넬의 영화는, 고전을 배반함으로써 고전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우회로가 된다. 거기에 더해 원작과 견주지 않아도 아름답고 잔인한 타인의 얼굴을 한, 새로운 폭풍 같은 독립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음악 정보 / 음악감독 안소니 윌리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폭풍을 완성하는 것은 음악이다. 페넬의 전작에 이어 음악 감독 안소니 윌리스와 함께 찰리 XCX가 다양한 스코어를 작곡했다. 존 케일이 참여한 리드 싱글 ‘House’를 비롯해 ‘Chains of Love’, ‘Wall of Sound’ 같은 곡들은, 고딕풍 인테리어를 채운 이 영화의 세계에서 비트와 노이즈, 팝 멜로디를 폭풍처럼 화면 속으로 밀어 넣는다. 현란한 팝 사운드가 익숙한 고전의 이미지를 깨뜨리며, 브론테의 난폭한 감정을 21세기의 클럽과 플레이리스트로 끌어온다.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 어른들은 나빴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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