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섷잠몽 Jun 27. 2022

빨래를 개다가

비 오기 전 바람 참 심하게도 부는구나 싶은 오후

빨래를 갠다


이상하게 날이 궃을수록 차분해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슬비 내리며 먹구름 낀 날

조용한 집에 귀를 기울이면

엄마는 고생했구나


빨래는 이미 내 손에 있고

설거지도 내 손에 있고

쓰레기도 내 손에 있는데

청소도 내 손에 있는데

그동안 많은 것들이 엄마에게 있었구나


오후 다섯시

빨래를 개며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를 떠올리다가

아직도 홀로 기다리는 아이를

반지하방을 벗어나지 못한 아이를

떠올린다


일곱 살 때도 여덟 살 때도 아홉 살 때

육 학 년 때까지 기다렸던 듯한데

돌고 돌아

서른이 넘어서도 기다린다.

반지하 방에 누워 뒤를 돌아보던 아이는

아파트에서 기다린다


애 같다 할 수 있겠지만

가끔은 ‘대학생이세요?’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애 같아서 좋은 것도 있구나 싶고


빨래를 비 오는 날에 말리면

잘 말리지도 않고 꿉꿉한 법인데

반지하방에서 축축하게 커서

지금도 슬픔을 갖고 사나 싶다가도


근데 또 그게 나인 건 어쩔 수 없는 문제라

뭐라도 나라서 상관없어서

이런 나라도 만족한다.


빨래를 개다가 문득 떠올려보니

세탁기에 빨래가 있다

이번엔 널어야 하는구나


나도 같이 널려서

오늘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빨래랑 좀 같이 말리면

반지하방 아이도 그곳을 떠나려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