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엄마는 아이의 동작을 따라 숫자를 읊었다. 버스 의자에 앉아 아이는 춤을 췄다. 엄마는 그 춤을 잘 알고 있었다. 베니타치오의 곡으로 만든 그 춤. 아이는 암에 걸린 뒤로 그 춤만 췄다.
엄마의 눈에 동작이 어딘가 어긋나 보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그대로 춤췄다. 황코치와 안무를 짜면서 수없이 보던 동작이었기에 엄마는 손마디 각도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 뒤틀림은 무엇인지.
베니타치오의 곡은 완결성을 향한 시작과 끝이었다. 느리게 시작해서 빠르게, 뻣뻣하게 출발해서 부드럽게. 베니타치오는 오로지 하나의 완성을 위해서만 이 곡이 시작되길 바랐다. 곡의 시작에서 화음과 선율은 느껴지지 않았다. 뚝뚝 끊기는가 하면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이 길어 다음 음표가 몇 마디 후에나 나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독립된 개체로 떠돌던 음, 빠르기, 박자가 하나의 군락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갇혀있던 선율은 자신의 빠르기를 되찾고 화음으로 치장했다. 굳어있던 무용수의 몸은 완전한 선으로 탈바꿈했다.
남자였던 아이가 추기엔 어려운 곡이었다. 엄마와 팀원 모두 이 곡은 안된다고 동의했다. 독립된 음악적 요소를 표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통합이었다. 모든 것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봉합하느냐가 중요했다. 그것은 완성이면서 통합이었고, 끝이면서 탄생이었다. 이것을 표현하기에 아이는 어렸다. 오히려 임종을 앞둔 노인에게 어울렸다. 애초에 베니타치오는 나이든 연인를 위해 이 곡을 썼다. 은퇴한 그녀가 평생 백조로 남길 바라면서.
게다가 성인 발레리나를 위한 곡이었다. 성인 만큼 근력이 탄탄하면서 여자처럼 유연하게 몸을 이끌어야 했다. 2차 성징을 막 시작한 남아가 감당하긴 어려웠다.
엄마는 선뜻 문제를 꼬집지 못했다. 단순히 각도만 문제를 삼기엔 아이의 춤은 훌륭했다. 고개짓과 두 손으로 표현된 선율은 마치 물결치듯 출렁였다. 손 끝부터 어깨까지 곡선을 그린 동작을 아이는 수월하게 해냈다. 엄마는 아이의 앞자리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이의 표정은 어떨까. 자신을 잡아끄는 무음의 음악을 엄마는 따라가고 싶었다. 가슴이 미세하게 떨렸고 엄마는 아이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가방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는 물통과 종이봉투를 꺼내 아이를 불렀다.
“약 먹을 시간이야.”
“응.”
아이는 춤을 멈추고 순순히 약을 받았다. 그러고는 망설임없이 들이켰다. 약봉지를 구겨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고 다시 무언가를 꺼냈다. 마법사 캐릭터가 새겨진 물병이었다. 그 안엔 노란 액체가 담겼다. 물통을 빛에 비춰본 아이는 침전물을 확인하고 물을 마셨다. 아이는 병원에서 사귄 여자애가 그것을 줬다고 말했다. 노란물을 발견하던 날 엄마는 그것을 버리려고 했지만 아이는 내주지 않았다.
“춤 동작이 좀 바뀐 거 같아.”
물을 다 마시자 엄마가 물었다.
아이는 몸을 비스듬히 틀어 귀를 엄마 쪽에 놓았다. 엄마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모르겠는데?”
“동작 바꾼 거 아니야?”
“엄마랑 선생님이 알려준대로 췄어.”
“엄마 돌아봐. 어디서 그랬는지 알려줄게.”
아이는 그제야 몸을 돌렸다. 반짝이는 눈이 엄마에게 비췄다.
엄마는 어느 부분이 어색했는지 말했다. 검지와 중지가 다른 손가락보다 과도하게 뒤로 밀렸다. 양 팔은 같은 선상에서 동시에 움직여야 했지만 그 선이 어긋나 엇갈린 자세였다. 엄마는 가지만 앙상한 고목나무를 생각했다. 어때, 다르지? 엄마가 물었다. 아니, 모르겠는데. 아이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엄마는 다음말을 고민했다. 그러자 아이가 물었다. 그래서 이상했어? 아이는 당돌하게 반문했다. 문제될 게 없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엄마는 방금 느낀 그 떨림을 기억해냈다. 아이의 물음에 정직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 말을 듣고 아이는 몸을 돌렸다.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자 암투병 중에 자른 짧은 머리에 맨 살이 드러났다.
병원 중앙홀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로비를 채운 사람들에 엄마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화기암내과에 접수 마치고 벤치에 앉자 곧바로 간호사가 나왔다. 선생님이 검사는 따로 없으시대요. 간호사가 말했다. 결과를 들으려면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엄마는 의아했다. 검사를 받은 적이 없는데 검사 결과라뇨? 간호사는 차트를 확인했다. 아버님께서 동의하시고 며칠 전에 검사 받으셨어요. 간호사는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보였다. 다시 확인해드릴까요라는 물음에 엄마는 괜찮다고 답했다. 오늘 환우를 위한 공연이 있으니 보시고 돌아오시면 시간 맞을 거에요.
자판기에서 코코아를 꺼내 엄마는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는 의심스런 눈으로 엄마를 보았다.
“괜찮아. 오늘만 허락해줄게.”
엄마는 막 뽑은 커피를 마셨다.
“공연 있다는데 보러 갈까?”
“아니. 난 어디 좀 갔다 올게.”
아이는 코코아를 쭉 들이키고 복도로 뛰어갔다. 붙잡을까. 대신 엄마는 아이에게 당부했다.
“한 시간 안에 돌아와. 전화 하면 바로 받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 목소리만 남아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볼까 엄마는 무안해졌다.
삼십 분이 지나는 동안 진료실에 대여섯 명이 들락였다. 엄마는 다른 것 말고 얼굴만 확인했다. 노인과 중장년, 청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가방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암센터 진료 예약 안내]. 아침에 왔던 문자였다. 문득 엄마는 추가 검사를 통보 받던 날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