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아래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아이들만 살았습니다.
아침이면 닭이 울고, 아이들은 우물가에 모여 세수를 했습니다. 빵 굽는 냄새가 골목마다 퍼지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 할 일을 했습니다. 열두 살이 되면 아이들은 산 너머 도시로 떠났습니다. 그곳은 어른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한 번 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겨울, 이상한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얀 눈이 아니었습니다. 까만 눈이었습니다. 검은 눈송이가 지붕에 내려앉자 지붕이 차가워졌습니다. 그 눈을 맞은 아이들은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하루 종일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눈이 오는 걸까?" 시원이가 물었습니다.
시원이는 열한 살이었습니다. 내년이면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시원이는 지붕에 올라가 산 너머를 바라보았습니다. 검은 구름이 어른들의 도시 위에 떠 있었습니다. 구름은 천천히 이쪽으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시원이는 방에서 가방을 꺼냈습니다.
물 한 병, 빵 두 조각. 그때 문이 열렸습니다. 이제 여덟 살인 동생 한솔이었습니다.
"형, 뭐 해?"
"……아무것도 아니야."
한솔이는 가방을 보고, 시원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형, 산 넘어가려고?" 시원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한솔이가 형 옆에 앉았습니다. "무서워?"
시원이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응. 무서워."
"그런데 왜 가려고 해?"
"저 검은 눈 때문에 다들 아프잖아. 누군가는 가봐야 할 것 같아서."
한솔이는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말했습니다.
"형,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안 돼. 위험해."
"형 혼자 가는 것도 위험해."
시원이는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둘이 가면 덜 무섭잖아."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시원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작게 웃었습니다.
"……알았어. 같이 가자."
산길은 어두웠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울 때마다, 한솔이는 형의 손을 더 꽉 잡았습니다.
고개를 넘자, 도시가 보였습니다.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습니다. 불빛은 많았지만, 이상하게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거리에는 어른들이 빠르게 걸어 다녔지만, 아무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는 골목에 숨어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한 어른이 다른 어른에게 말했습니다.
"그것도 못 해? 쓸모없군."
그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작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습니다.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 구름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한솔이가 속삭였습니다.
"형, 저 말들이 눈이 되는 거야?"
시원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알 것 같았습니다.
두 아이는 도시의 광장까지 걸어갔습니다. 시계탑 아래에서 한 어른이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어깨가 축 처져 있었습니다. 아까 "쓸모없다"는 말을 들은 사람이었습니다. 시원이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솔이가 형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형, 내가 먼저 가볼까?"
"……응?"
"형이 뒤에서 봐줘. 그러면 나도 덜 무서울 것 같아."
시원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솔이가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아저씨, 괜찮아요?"
어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이를 보고 놀란 눈을 했습니다.
"……그냥 좀 힘들어서."
한솔이는 주머니에서 빵 한 조각을 꺼냈습니다.
"이거 드세요. 맛있어요."
어른은 빵을 받아 들고 한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고마워."
그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이번엔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작고 하얀빛이 피어올랐습니다. 구름 한쪽이 조금 옅어졌습니다.
시원이는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따뜻한 말이 빛이 되는구나.' 용기가 났습니다. 광장 건너편에 또 다른 어른이 앉아서, 혼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습니다. 시원이가 다가갔습니다.
"저기요, 뭐 그리세요?"
어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옛날엔 그림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무도 관심 없어해서."
시원이는 종이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작은 새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예뻐요. 우리 마을에도 그려 주세요."
어른의 눈이 커졌습니다.
"……정말?"
"네."
"……고마워. 오랜만에 그런 말 들었어."
또 하얀빛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날, 두 아이는 광장을 돌아다녔습니다. 혼자 앉은 어른을 보면 다가갔습니다.
"오늘 힘드셨어요?" "점심은 드셨어요?"
처음엔 어른들이 어리둥절해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말을 듣고 나면, 표정이 조금씩 풀어졌습니다.
"……고마워."
그때마다 하얀빛이 피어올랐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아까 빵을 받았던 어른이 다가왔습니다. 따뜻한 국이 담긴 그릇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거 먹어. 아까 너희가 나눠줬잖아."
그림을 그리던 어른도 다가왔습니다.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아까 그 새, 다시 그렸어."
시원이가 물었습니다.
"아저씨들은 왜 다들 차가운 말만 해요?"
두 어른이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바쁘다 보니까 잊어버렸나 봐. 따뜻하게 말하는 법을."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요, 아침마다 '잘 잤어?' 하고 물어봐요. 저녁에는 '오늘 뭐 했어?' 하고요."
어른들이 조용히 들었습니다.
"……우리도 그랬었는데."
그날 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광장에서 만난 어른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른 어른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수고했어." "밥은 먹었어?"
따뜻한 말을 들은 어른들도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하얀빛이 여기저기서 피어올랐습니다. 마치 반딧불이 퍼지듯, 도시 곳곳에서 빛이 올라왔습니다. 검은 구름이 점점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봄, 산 너머에서 어른 몇 명이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빵을 받았던 어른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던 어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따뜻한 말을 전해 들은 어른들이었습니다.
"부탁이 있어. 따뜻하게 말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싶어."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먼저 인사하면 돼요."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그리고요, 같이 살려면 규칙이 있어요. 빵은 나눠 먹는 거예요."
어른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았어. 약속할게."
그해 여름, 마을에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이면 모두 모여 밥을 먹었습니다. 누군가 힘든 일이 있으면 물어봤습니다.
"오늘 괜찮았어?"
그때마다 작은 빛이 피어올랐습니다. 하늘에는 더 이상 검은 구름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