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이에게는 아끼는 장난감이 있었습니다.
작년 생일에 아빠가 사준 빨간 로봇이었습니다. 팔도 움직이고, 다리도 움직이고, 가슴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불빛이 반짝거렸습니다.
"시원아, 이거 잘 간직해. 아빠가 어렸을 때 갖고 싶었던 거야."
시원이는 그날부터 로봇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로봇을 보았습니다. 잠들기 전에도 로봇을 만졌습니다. 팔을 움직여보고, 버튼을 눌러보고, 불빛이 반짝거리는 걸 바라보았습니다.
한솔이는 그런 형을 지켜보았습니다.
'나도 만져보고 싶다.'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시원이는 친구 집에 놀러 가고 엄마는 장을 보러 나갔습니다. 집에는 한솔이 혼자 있었습니다. 한솔이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형 방 앞에 섰습니다.
조금 열린 문 사이로 책상 위에 로봇이 보였습니다. 빨간색이 반짝거렸습니다.
'잠깐만 만져보면 안 될까?'
한솔이는 방 안으로 들어가 로봇을 집어 들었습니다. 팔을 움직여보고 다리를 움직여보았습니다. 가슴에 있는 버튼을 누르니 불빛이 반짝거렸습니다.
'와, 진짜 멋있다.'
한솔이는 로봇을 들고 방 안을 돌아다녔습니다. 로봇을 가지고 적을 물리치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발이 이불에 걸렸습니다. 한솔이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손에서 로봇이 빠져나갔습니다.
로봇이 바닥에 떨어져 딱,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한솔이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로봇을 바라보았습니다. 로봇의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가 있었고 어깨 부분이 부러져 있었습니다. 한솔이의 심장이 쿵쿵거렸습니다.
'어떡하지.'
한솔이는 로봇을 집어 들고 팔을 다시 붙여보았지만 다시 붙지 않았습니다. 밀어보고, 눌러보고, 돌려보았는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형이 알면 어떡하지.'
한솔이의 손이 떨렸습니다. 현관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엄마가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한솔이는 재빨리 로봇을 책상 서랍 뒤에 밀어 넣고 서랍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방에서 나왔습니다.
저녁이 되어 시원이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한솔이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척했습니다. 하지만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형이 로봇을 찾으면 어떡하지.' 잠시 후, 시원이가 방에서 나왔습니다.
"엄마, 내 로봇 못 봤어요?"
"로봇? 네 방에 있지 않아?"
"책상 위에 없어요."
한솔이의 심장이 다시 쿵쿵거렸습니다. 시원이가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한솔아, 너 내 로봇 봤어?" 한솔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
"이상하다. 분명히 책상 위에 뒀는데." 시원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시원이가 로봇을 찾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솔이는 텔레비전만 바라보았습니다. 화면이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시원이는 계속 로봇을 찾았습니다.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이상하다." 한솔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부러진 로봇과 형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말해야 하나.'
'근데 형이 화내면 어떡하지.'
'그냥 모르는 척하면 안 될까.'
한솔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침이 되면 밥이 잘 안 넘어갔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한솔아, 어디 아파? 밥을 잘 안 먹네."
"……아니요. 괜찮아요." 한솔이는 고개를 숙이고 숟가락만 만졌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시원이는 로봇 찾는 걸 포기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가끔 책상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한솔이는 그런 형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시원이가 한솔이에게 말했습니다.
"한솔아, 우리 같이 놀래?"
"……응."
둘이 거실에서 블록을 쌓았습니다. 시원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솔아, 이거 봐. 탑이다."
한솔이는 웃지 못했습니다.
"……응." 시원이가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한솔아, 너 요즘 왜 그래? 맨날 힘없어 보여."
"……아무것도 아니야." 시원이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한솔이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한솔이는 잠을 자다가 깼습니다.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습니다. 한솔이는 이불속에서 한참을 누워 있었습니다.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이렇게 계속 숨기면 어떡하지.'
'형은 계속 로봇을 찾을 거야.'
'나는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해.' 한솔이는 눈물이 났습니다.
'말해야 해.'
'형한테 말해야 해.'
한솔이는 이불을 걷고 일어났습니다. 살금살금 문을 열고 형 방으로 갔습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형."
대답이 없었습니다. 한솔이는 문을 열지 시원이가 자고 있었습니다. 한솔이는 형 옆에 섰습니다.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내일 말할까.'
'아니야. 지금 말해야 해.' 한솔이가 시원이의 어깨를 흔들었습니다.
"형……."
시원이가 눈을 떴습니다.
"……응? 한솔아? 왜?"
"형, 나 할 말 있어." 시원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습니다.
"뭔데? 무슨 일이야?" 한솔이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형, 나……." 한솔이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형 로봇, 내가 망가뜨렸어."
시원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솔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형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표정을 알 수 없었습니다.
"……어디 있어?"
"서랍 뒤에." 시원이가 일어났습니다. 책상으로 갔습니다. 서랍을 열었습니다. 서랍 뒤를 뒤졌습니다.
부서진 로봇이 나왔습니다. 시원이는 한참 동안 로봇을 바라보았습니다. 한솔이는 형 뒤에 서서 떨고 있었습니다.
"……미안해, 형." 시원이가 돌아보았습니다.
"왜 만졌어?"
"……나도 만져보고 싶었어."
"왜 말 안 했어?"
"……무서웠어. 형이 화낼까 봐." 시원이의 눈이 젖어 있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 찾았잖아."한솔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시원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로봇만 내려다보았습니다.
한참이 지났습니다. 한솔이는 계속 울었습니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시원이가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달빛이 방 안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시원이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한솔아."
"……응."
"화났어. 진짜 화났어." 한솔이가 고개를 더 숙였습니다.
"……응."
"근데." 시원이가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말해줘서 고마워." 한솔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응?"
"숨기고 있으면 더 힘들었을 거야. 나도, 너도." 한솔이는 형을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형, 진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시원이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더니 동생 머리를 툭 쳤습니다.
"다음엔 만지고 싶으면 말해. 빌려줄게."
"……진짜?"
"응. 근데 조심해야 해." 한솔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응. 약속해." 시원이가 부러진 로봇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빠한테 말해서 고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응."
다음 날 아침, 둘은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한솔이가 먼저 말했습니다.
"아빠, 제가 형 로봇 망가뜨렸어요." 시원이가 옆에서 말했습니다.
"고칠 수 있어요?" 아빠는 로봇을 살펴보았습니다. 부러진 팔을 이리저리 돌려보았습니다.
"음…… 한번 해볼게. 약속은 못 하지만."
아빠가 조심스럽게 팔을 붙였습니다. 접착제를 바르고, 잠시 기다리고, 살짝 눌렀습니다.
"자, 이제 하루 동안 안 건드리면 돼." 시원이가 물었습니다.
"움직일 수 있어요?"
"글쎄, 예전만큼은 안 될 수도 있어. 좀 뻣뻣할 거야." 한솔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죄송해요." 아빠가 한솔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한솔아, 말해줘서 잘했어."
"……네?"
"숨기고 있으면 마음이 더 아팠을 거야. 용기 냈네." 한솔이는 아빠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형을 보았습니다. 시원이가 작게 웃었습니다.
하루가 지나 시원이가 로봇의 팔을 조심스럽게 움직여보았습니다. 예전보다 뻣뻣했지만, 움직였습니다. 가슴의 버튼을 누르자 불빛도 반짝거렸습니다.
"된다!" 한솔이가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다행이다." 시원이가 로봇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예전 자리예요.
그러더니 한솔이에게 말했습니다.
"한솔아."
"응?"
"만지고 싶으면 말해. 같이 가지고 놀자." 한솔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응. 고마워, 형."
그날 저녁, 형제는 함께 로봇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시원이가 로봇을 움직이고, 한솔이가 적 역할을 했습니다.
"슈웅! 펑!" 한솔이가 소리를 냈습니다. 이번엔 조심하면서요. 시원이가 웃었습니다.
"한솔아, 너 로봇 좋아하는구나."
"응. 멋있잖아."
"다음에 네 생일 때 아빠한테 부탁해 볼까?" 한솔이의 눈이 커졌습니다.
"……진짜?"
"응." 한솔이가 활짝 웃었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가슴에 올려놓았던 돌덩이가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한솔이는 생각했습니다. 숨기고 있을 때는 정말 힘들었구나. 말하니까 이렇게 가벼워지는구나.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한솔아."
"응?" "다음엔 뭐든 말해. 화내도 금방 풀어줄게."
한솔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응. 약속해."
형제의 따뜻한 약속과 함께 로봇의 불빛이 반짝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