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온 아이

by 보통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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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오후였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골목 끝에서 커다란 트럭이 나타났습니다. 이삿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었습니다. 트럭은 천천히 골목을 지나 옆집 앞에 멈춰 섰습니다.

한솔이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형, 누가 이사 오나 봐."

시원이도 옆에 섰습니다. 트럭에서 아저씨들이 내려 짐을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상자들, 가구들, 이불 보따리 그리고 승용차 한 대가 뒤따라 왔습니다.

차 문이 열리더니 남자아이 하나가 내렸습니다. 한솔이보다 조금 작아 보였습니다. 아이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시원이와 한솔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한솔이가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이는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만 살짝 숙이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형, 저 애 우리 또래인 것 같아."

"그러네."

한솔이는 아이가 들어간 대문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였습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선생님이 아이 하나를 데리고 교실에 들어왔습니다. 어제 본 아이였습니다.

"얘들아, 오늘부터 우리 반 친구가 된 민준이야. 다들 친하게 지내자."

민준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습니다. 목소리가 작았습니다.

"안녕……."

그게 전부였습니다. 민준이는 선생님이 가리킨 자리에 가서 조용히 앉았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민준이 주변에 모였습니다.

"야, 뭐 좋아해?"

민준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림."

"그림? 축구는?"

"……잘 못해."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야, 우리 축구하러 가자!"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민준이는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가방에서 공책을 꺼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민준이는 늘 혼자였습니다. 말이 없었고, 먼저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공책을 꺼내 뭔가를 그렸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운동장 구석 벤치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민준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어색했습니다.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한솔이는 민준이를 자주 보았습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운동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민준이는 그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솔이가 시원이에게 물었습니다.

"형, 옆집에 이사 온 애 있잖아."

"응."

"학교에서 맨날 혼자 있어."

시원이가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친구가 없나 보지."

"왜 없어?"

"글쎄…… 말이 없어서 그런가?"

한솔이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민준이네 집 불빛이 보였습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겠다."

시원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었습니다.

한솔이는 밥을 먹고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민준이가 오늘도 그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공책을 펼쳐놓고 뭔가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한솔이는 잠깐 멈춰 섰습니다. 그러다 민준이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뭐 그려?"

민준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로봇."

한솔이가 공책을 보았습니다. 빨간 로봇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팔이 길고, 가슴에 동그란 버튼 같은 게 있었습니다. 꽤 잘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와, 잘 그린다."

민준이가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진짜?"

"응. 나는 이렇게 못 그려."

민준이의 표정이 조금 풀렸습니다.

"……고마워."

한솔이가 옆에 앉았습니다.

"나는 한솔이야. 너는?"

"……민준이."

"민준아, 로봇 좋아해?"

"응. 좋아해."

"나도!"

한솔이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우리 형한테 로봇 있어. 빨간 거. 가슴에서 불빛 나와."

민준이의 눈이 커졌습니다.

"……진짜?"

"응. 생일 선물로 받은 건데, 진짜 멋있어."

민준이가 공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자기가 그린 로봇을 보았습니다.

"나도…… 그런 거 갖고 싶어."

"다음에 보여줄까? 형한테 물어볼게."

민준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괜찮아?"

"응. 형이 빌려준대. 조심하면 돼."

민준이가 작게 웃었습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습니다.

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했습니다.

민준이는 말이 많지 않았지만, 로봇 이야기를 할 때는 달랐습니다. 눈이 반짝거렸고 목소리도 조금 커졌습니다.

"나, 커서 로봇 만드는 사람 되고 싶어."

"진짜? 멋있다."

"……멋있어?"

"응. 로봇 만드는 사람이면 원하는 거 다 만들 수 있잖아."

민준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걸어 다니는 로봇 만들고 싶어. 진짜로 움직이는 거."

"와, 그거 엄청 어렵지 않아?"

"어려워. 근데 해보고 싶어."

한솔이가 웃었습니다.

"민준아, 너 말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로봇 이야기할 땐 말 많다."

민준이가 멈칫했습니다. 그러더니 작게 웃었습니다.

"……그런가?"

"응."


그때, 시원이가 다가왔습니다.

"한솔아, 여기 있었네. 뭐 해?"

"형! 이 친구 민준이야. 옆집에 이사 온 애."

시원이가 민준이를 보았습니다.

"아, 그날 본 것 같아. 안녕."

민준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안녕."

한솔이가 공책을 가리켰습니다.

"형, 이거 봐. 민준이가 그렸어."

시원이가 공책을 보았습니다. 빨간 로봇 그림이 있었습니다.

"와, 잘 그린다. 우리 집 로봇이랑 비슷해."

민준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진짜 로봇 있어?"

"응. 아빠가 사준 거야."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형, 민준이한테 보여줘도 돼?"

"그래. 다음에 집에 놀러 와."

민준이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고마워."

시원이가 물었습니다.

"민준아, 전에는 어디 살았어?"

"……다른 동네. 좀 멀어."

"친구 많았어?"

민준이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별로. 나 말이 없어서."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말 없어도 괜찮아. 그림 잘 그리잖아."

민준이가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그래도 돼?"

"당연하지. 나도 말 많은 편 아니야."

시원이가 웃었습니다.

"한솔이가? 집에서는 엄청 시끄러운데."

"형!"

시원이 한솔이 민준이 셋 모두가 웃었습니다. 셋은 벤치에 앉아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민준이가 좋아하는 로봇 이야기, 한솔이가 좋아하는 게임 이야기, 시원이가 읽은 책 이야기.

민준이는 여전히 말이 많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고, 가끔 질문도 했습니다.

"그 게임, 재밌어?"

"응! 엄청 재밌어. 다음에 같이 해."

"……그래도 돼?"

"당연하지."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민준아, '그래도 돼?' 자주 물어보네."

민준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습관이야. 미안."

"미안할 거 없어. 그냥 당연히 돼."

민준이가 시원이를 보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이 촉촉해 보였습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민준이가 가방을 메고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오늘…… 고마워."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뭐가?"

"같이 놀아줘서. 여기 와서 처음이야."

"처음?"

"응. 아무도 먼저 말 안 걸었어."

한솔이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그냥 궁금했어. 뭘 그리나."

민준이가 작게 웃었습니다.

"……고마워."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집 이쪽이야. 너희 집은?"

"저쪽. 바로 옆집."

"어, 진짜? 정말 가깝네."

셋이 함께 걸었습니다. 골목을 지나고, 모퉁이를 돌았습니다. 민준이네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내일 봐."

"……응. 내일 봐."

민준이가 대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문이 닫히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보았습니다. 손을 흔들었습니다. 한솔이와 시원이도 손을 흔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형, 민준이 좋은 애인 것 같아."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여기 와서 처음으로 같이 논 거래."

시원이가 동생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네가 먼저 말 건 거야?"

한솔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나도 형 없으면 그럴 것 같아서."

시원이가 웃었습니다.

"잘했어, 한솔아."

"형도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

"그게 뭐. 재밌었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의 약속 나무가 보였습니다. 봄바람에 잎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한솔이와 시원이는 마당에 나와 약속 나무 아래 앉았습니다.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형, 내일 민준이한테 로봇 보여줘도 돼?"

"응. 보여줘."

"고마워."

"그 정도는 당연하지."

한솔이가 웃었습니다.

"민준이 엄청 좋아하겠다. 로봇 진짜 좋아하거든."

"그러게. 그림도 잘 그리더라."

한솔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별이 하나둘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형."

"응?"

"먼저 말 거는 게 어려운 거야?"

시원이가 동생을 보았습니다.

"왜?"

"민준이가 아무도 먼저 말 안 걸었대. 근데 나는 그냥 궁금해서 간 건데."

시원이가 생각했습니다.

"……어떤 애들한테는 어려운 거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니까."

"나는 그냥 '뭐 그려?' 했는데."

"그게 용기야."

한솔이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용기?"

"응. 모르는 애한테 먼저 말 거는 거. 쉽지 않아."

한솔이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런가?"

"응. 그래서 잘한 거야."

약속 나무 위로 별이 더 떠올랐습니다. 잎사귀가 바람에 살랑거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한솔이와 시원이가 학교에 가려고 대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민준이가 서 있었습니다. 가방을 메고, 조금 긴장한 얼굴로.

"……같이 가도 돼?"

한솔이가 웃었습니다.

"당연하지. 가자."

셋은 나란히 학교까지 걸었습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셋을 보았습니다. 어떤 아이가 물었습니다.

"야, 쟤 전학생 아니야? 너희랑 친해?"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응. 친구야."

민준이가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웃고 있었습니다. 종이 울리자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민준이가 돌아서며 말했습니다.

"점심때 봐."

"응. 그 벤치에서."

"……응."

민준이가 교실로 들어가고 한솔이와 시원이도 각자 교실로 갔습니다. 한솔이는 자리에 앉으며 생각했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셋이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날 저녁, 민준이가 시원이네 집에 왔습니다. 시원이가 책상 위에서 로봇을 가져왔습니다.

"이거야."

민준이의 눈이 커졌습니다.

"……와."

시원이가 버튼을 눌렀습니다. 불빛이 반짝거렸습니다.

"팔도 움직여. 해볼래?"

민준이가 조심스럽게 로봇을 받았습니다. 팔을 움직여보았습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진짜 움직인다."

한솔이가 웃었습니다.

"멋있지?"

"응. 진짜 멋있어."

민준이가 로봇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시원이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고마워. 보여줘서."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또 보고 싶으면 말해. 같이 놀자."

민준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작게 웃었습니다.

셋은 저녁때까지 함께 놀았습니다. 로봇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제 민준이가 집에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 갈게. 오늘 진짜 재밌었어."

"내일 또 놀자."

"……응."

민준이가 대문을 나섰습니다. 그러다 멈춰서 돌아보았습니다.

"한솔아."

"응?"

"그날 먼저 말 걸어줘서…… 고마워."

한솔이가 웃었습니다.

"그게 뭐. 친구잖아."

민준이가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집으로 갔습니다. 한솔이와 시원이는 대문 앞에 서서 민준이가 옆집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한솔아."

"응?"

"너 덕분에 민준이가 웃네."

한솔이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먼저 다가갔잖아. 그게 전부야."

한솔이는 시원이를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웃었습니다.

"형도 같이 놀아줬잖아."

"그건 네가 시작해서 그런 거야."

둘은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당의 약속 나무가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잎사귀 사이로 별빛이 반짝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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