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는 거실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늘 금요일 저녁에는 아빠가 항상 치킨을 사 왔습니다. 그게 우리 집 규칙이었습니다.
"형, 아빠 언제 와?"
"곧 오시겠지."
한솔이가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골목 끝에서 아빠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아빠다!"
한솔이가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멈춰 섰습니다.
아빠 손에 치킨이 없었습니다.
아빠가 신발을 벗고 들어왔습니다. 평소와 달랐습니다. 인사도 없이 소파에 털썩 앉았습니다. 넥타이를 풀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습니다.
"……."
한솔이가 시원이를 보았습니다. 시원이도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뭐지?'
엄마가 부엌에서 나왔습니다.
"왔어요? 밥 차릴게요."
아빠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말이 없었습니다.
한솔이가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아빠, 오늘 치킨은?"
아빠가 눈을 떴습니다.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이마를 손으로 짚었습니다.
"……아. 깜빡했다."
"깜빡했어요?"
"응. 미안. 오늘은…… 그냥 밥 먹자."
아빠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습니다. 피곤해 보였습니다. 한솔이는 더 말하지 못했습니다.
저녁 식사는 조용했습니다.
평소에는 아빠가 회사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뭘 했는지, 점심에 뭘 먹었는지, 재밌는 일은 없었는지. 그런데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밥만 먹었습니다.
시원이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빠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응?"
"그냥…… 평소랑 달라서요."
아빠가 잠깐 시원이를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다시 밥을 먹었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는 서로를 보았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더 묻지 못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아빠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닫았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는 거실에 남았습니다. 텔레비전을 켰지만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한솔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형, 아빠 왜 저래?"
"몰라."
"우리가 뭐 잘못했나?"
시원이가 생각했습니다. 오늘 뭘 잘못했을까요.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인사는 했습니다. 숙제도 다 했습니다.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왜 아빠가 화난 것 같아?"
시원이도 그게 궁금했습니다.
한참이 지났습니다.
엄마가 거실로 나왔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가 조용히 앉아 있는 걸 보았습니다.
"너희 왜 그래?"
한솔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아빠 왜 저래요?"
엄마가 잠깐 멈췄습니다. 그러더니 아이들 옆에 앉았습니다.
"아빠가 오늘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나 봐."
"힘든 일이요?"
"응. 어른들도 힘든 날이 있어."
시원이가 물었습니다.
"우리 때문에 화가 난 거 아니에요?"
엄마가 웃었습니다. 시원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아니야. 너희 때문이 아니야. 아빠가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한솔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는 방에서 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한솔이가 속삭였습니다.
"형."
"응?"
"아빠한테 가볼까?"
"……지금?"
"응. 뭔가 해주고 싶어."
시원이가 생각했습니다.
"뭘 해줘?"
"몰라. 그냥…… 가보고 싶어."
시원이가 일어났습니다.
"그래. 같이 가자."
형제가 살금살금 방을 나왔습니다.
아빠 방 앞에 섰습니다. 문 아래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직 안 주무셨습니다.
한솔이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빠?"
잠깐 조용했습니다. 그러더니 문이 열렸습니다.
아빠가 서 있었습니다. 아까보다 얼굴이 더 피곤해 보였습니다.
"왜? 안 자고?"
"아빠……."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괜찮아요?"
아빠가 아이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한참을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아빠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가 양옆에 앉았습니다.
한참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해."
시원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뭐가요?"
"오늘 치킨도 못 사 오고, 밥 먹을 때도 말 없고. 너희 신경 쓰였지?"
한솔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가 뭐 잘못한 줄 알았어요."
아빠가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아니야. 너희 때문이 아니야."
"그럼 왜요?"
아빠가 한숨을 쉬었습니다. 천장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빠도…… 힘든 날이 있어."
"힘든 날이요?"
"응. 오늘 회사에서 일이 잘 안 됐어. 아빠가 실수를 했거든."
시원이가 물었습니다.
"아빠도 실수해요?"
아빠가 웃었습니다. 쓴웃음 같았습니다.
"당연하지. 아빠도 실수 많이 해."
아빠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어른이라고 다 잘하는 거 아니야. 아빠도 모르는 거 많고, 틀릴 때도 많아. 오늘은…… 그런 날이었어."
한솔이가 아빠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많이 힘들었어요?"
"응. 좀 힘들었어."
"그래서 말이 없었어요?"
"응. 기분이 안 좋으니까 말이 안 나오더라. 너희한테 짜증 낼까 봐 그냥 조용히 있었어."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우리한테 말해도 돼요."
아빠가 시원이를 보았습니다.
"응?"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돼요. 우리도 들을 수 있어요."
아빠의 눈이 커졌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한솔이가 아빠 팔을 잡았습니다.
"나도. 나도 들을 수 있어."
아빠가 두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 고마워."
아빠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습니다.
한솔이가 갑자기 아빠를 안았습니다. 꽉 안았습니다.
"아빠, 힘내요."
시원이도 아빠를 안았습니다.
"내일은 좋은 일 있을 거예요."
아빠가 두 아이를 안았습니다. 세 사람이 한참 동안 그렇게 있었습니다.
아빠가 말했습니다.
"……고맙다. 진짜로."
한솔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빠."
"응?"
"내일 치킨 사 와요. 오늘 못 먹었잖아요."
아빠가 웃었습니다. 이번엔 진짜 웃음이었습니다.
"그래. 내일은 꼭 사 올게. 약속."
"진짜요?"
"응. 진짜."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근데요."
"응?"
"아빠도 실수하는 거 처음 알았어요."
아빠가 시원이를 보았습니다.
"왜? 아빠는 실수 안 하는 줄 알았어?"
"네. 아빠는 다 잘하는 줄 알았어요."
아빠가 웃었습니다.
"아빠도 그냥 사람이야. 너희처럼. 실수도 하고, 힘들 때도 있고, 가끔은 울고 싶을 때도 있어."
한솔이가 눈을 크게 떴습니다.
"아빠도 울어요?"
"가끔. 아주 가끔."
"언제요?"
아빠가 생각했습니다.
"음…… 너희가 아플 때.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너희가 태어났을 때."
"태어났을 때요? 왜요?"
"기뻐서."
한솔이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기쁜데 왜 울어요?"
"그런 게 있어.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
한솔이는 이해가 안 됐지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빠가 시계를 보았습니다.
"이제 자야지. 늦었다."
한솔이가 아빠를 붙잡았습니다.
"아빠, 조금만 더요."
"내일 학교 가야지."
"토요일이에요."
아빠가 웃었습니다.
"그러네. 그럼 조금만 더."
셋이 침대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응?"
"아빠가 힘들면 나한테 말해요. 내가 안아줄게."
아빠가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그래. 알았어."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나도요. 나도 들을 수 있어요."
아빠가 두 아이를 번갈아 보았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컸구나."
"우리 많이 컸어요?"
"응. 많이 컸어."
아빠가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한참이 지났습니다.
한솔이가 눈을 감았습니다. 잠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시원이도 눈이 무거워졌습니다.
아빠가 작게 말했습니다.
"오늘…… 고마웠어."
시원이가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뭐가요?"
"너희가 찾아와 줘서. 아빠 괜찮냐고 물어봐 줘서."
"……당연한 거죠."
"당연하지 않아. 아빠한테는."
시원이는 대답하려 했지만, 눈이 감겼습니다.
아빠가 두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잠든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이불을 덮어주었습니다.
창밖으로 달이 떠 있었습니다. 마당의 약속 나무가 달빛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내일은 좋은 일 있을 거야."
그리고 아빠도 눈을 감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가 눈을 떴습니다. 아빠 방이었습니다. 어젯밤에 여기서 잠들었던 거예요.
아빠가 없었습니다.
부엌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고소한 냄새도 났습니다.
형제가 부엌으로 갔습니다.
아빠가 프라이팬 앞에 서 있었습니다. 계란을 부치고 있었습니다.
"어, 일어났어?"
아빠가 웃었습니다. 어제와는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아빠가 아침을 해요?"
"응. 오늘은 아빠가 해 줄게."
한솔이가 눈을 비볐습니다.
"엄마는요?"
"엄마는 좀 더 자라고 했어. 오늘은 아빠가 다 할 거야."
시원이가 물었습니다.
"아빠, 기분 좋아졌어요?"
아빠가 시원이를 보았습니다. 웃었습니다.
"응. 많이 좋아졌어."
"진짜요?"
"응. 너희 덕분에."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빠가 만든 계란 프라이와 토스트.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계란이 조금 타고, 토스트가 좀 딱딱했습니다.
"아빠, 이거 탔어요."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미안. 아빠가 요리를 잘 못해서."
시원이가 계란을 먹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맛있어요."
"진짜?"
"네."
한솔이도 먹었습니다.
"나도 맛있어."
아빠가 웃었습니다.
"고마워. 다음엔 더 잘할게."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아빠도 연습하면 잘할 수 있어요. 우리가 호떡 만들 때처럼."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연습해 볼게."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아빠가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어디 가요?"
"치킨 사러."
한솔이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진짜요?"
"어제 약속했잖아."
"같이 가도 돼요?"
"그래. 같이 가자."
셋이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골목을 걸었습니다. 한솔이가 아빠 손을 잡았습니다. 시원이도 반대쪽 손을 잡았습니다. 아빠가 웃었습니다.
"너희 다 컸으면서 아직 손 잡아?"
"싫어요?"
"아니. 좋아."
셋이 손을 잡고 걸었습니다.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치킨을 먹었습니다.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먹었습니다. 아빠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게 금요일이지."
엄마가 말했습니다.
"토요일인데요."
"토요일도 괜찮아. 맛있으면 됐지."
한솔이가 치킨 다리를 들고 말했습니다.
"아빠, 다음 주 금요일에도 사 와요."
"그래. 약속."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다음에 힘든 일 있으면 말해요. 우리가 들을게요."
아빠가 시원이를 보았습니다.
"……그래. 알았어."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안아줄게요."
아빠가 웃었습니다.
"그래. 고마워."
밤이 되었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가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약속 나무 아래 앉았습니다.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형, 아빠도 힘든 날이 있구나."
"응."
"나는 아빠는 안 힘든 줄 알았어."
시원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도."
"어른이 되면 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한솔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별이 떠 있었습니다.
"형."
"응?"
"우리가 아빠 기분 좋게 해 준 거야?"
시원이가 생각했습니다.
"……그런 것 같아."
"어떻게?"
"그냥…… 찾아가서 물어본 거. 안아준 거."
한솔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게 도움이 돼?"
"응. 아빠가 고맙대잖아."
한솔이가 웃었습니다.
"다음에도 그렇게 해야지."
"응."
약속나무가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잎사귀 사이로 별빛이 반짝거렸습니다.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형, 아빠도 우리랑 똑같네."
"뭐가?"
"힘들면 힘들고, 기쁘면 기쁘고. 실수도 하고."
시원이가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족이지."
한솔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응. 가족이니까."
둘은 한참을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 아빠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솔이가 웃었습니다.
"아빠 웃는다."
"응."
"다행이다."
시원이도 웃었습니다.
"응. 다행이야."
별이 더 많이 떠올랐습니다. 약속나무가 바람에 살랑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