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운 날

by 보통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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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시원이는 거실 탁자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고, 한솔이는 바닥에 앉아 블록을 쌓고 있었습니다. 한솔이가 만든 블록 탑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빨간 블록, 파란 블록, 노란 블록 색깔별로 예쁘게 쌓여 있었습니다.


"형, 이것 봐. 거의 다 됐어."

시원이가 고개를 들어 보았습니다.

"오, 높다."

"조금만 더 하면 내 키만큼 돼."

한솔이가 신나서 말했습니다.

거의 다 완성될 때쯤, 시원이가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발이 블록 탑 근처를 스쳤습니다.

와르르.

탑이 무너졌습니다.

"형!" 한솔이가 소리쳤습니다.

"미안, 실수야."

"한 시간 동안 쌓았는데!"

한솔이가 무너진 블록을 바라보았습니다. 색깔별로 예쁘게 쌓았던 탑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형이 조심했어야지!"

한솔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시원이도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뭘 그렇게 화내. 다시 쌓으면 되잖아."

"형은 맨날 그래! 미안하다고만 하면 끝이야?"

"내가 언제 맨날 그랬어!"

둘 다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엄마가 부엌에서 나왔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한솔이가 대답 대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습니다. 시원이도 화가 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엄마가 거실에 혼자 남았습니다. 바닥에 흩어진 블록을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밥을 차렸습니다.

"밥 먹어."

시원이가 먼저 나왔습니다. 한솔이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서로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밥상에 나란히 앉았지만 말이 없었습니다. 시원이는 왼쪽만 보고, 한솔이는 오른쪽만 보았습니다.

엄마가 둘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둘이 동시에 말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평소에는 밥 먹으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오늘 뭐 할지, 어제 본 만화 이야기, 학교에서 있었던 일. 그런데 오늘은 숟가락 소리만 났습니다.

엄마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둘이 알아서 풀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오후 내내 둘은 따로 놀았습니다.

시원이는 거실 소파에서 책을 읽었고 한솔이는 방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같이 놀았을 텐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시원이가 책을 읽는데 집중이 안 됐습니다. 같은 문장을 세 번이나 읽었습니다. 자꾸 한솔이 방 쪽을 보게 됐습니다.

'뭐 하고 있을까.'

하지만 먼저 말 걸기는 싫었습니다.

'한솔이가 너무 화낸 거잖아.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한솔이도 그림을 그리는데 재미가 없었습니다. 로봇을 그리려고 했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꾸 거실 쪽에서 나는 소리에 귀가 갔습니다.

'형은 뭐 하고 있을까.'

하지만 먼저 나가기는 싫었습니다.

'형이 먼저 사과해야지. 형이 무너뜨린 거잖아.'


저녁때가 되었습니다. 아빠가 퇴근해서 들어왔습니다.

"오늘 뭐 했어?"

시원이가 대답했습니다. "책 읽었어요."

한솔이가 대답했습니다. "그림 그렸어요."

아빠가 둘을 보았습니다.

"같이 안 놀았어?"

둘 다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엄마를 보았습니다. 엄마가 작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녁을 먹을 때도 둘은 말이 없었습니다. 아빠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도 웃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시원이와 한솔이는 각자 방에서 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었습니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시원이가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진짜 내가 잘못한 건가?'

블록 탑이 무너진 건 실수였습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한솔이가 한 시간이나 쌓은 건 맞았습니다.

한솔이 말이 떠올랐습니다.

'형은 맨날 그래. 미안하다고만 하면 끝이야?'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습니다. 미안하다고 말만 하고, 그다음엔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한솔이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불속에서 뒤척거렸습니다.

'……내가 너무 화냈나?'

형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한 시간 동안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게 너무 속상했습니다.

한솔이가 이불을 끌어안았습니다. 화는 났는데, 형이 없으니까 이상했습니다. 하루 종일 형 얼굴을 안 봤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열한 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한솔이가 이불을 걷고 일어났습니다. 살금살금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습니다. 형 방 앞에 섰습니다. 문 아래로 불빛이 없었습니다. 형도 자려고 누운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뭐라고 하지?'

손을 들었다 내렸다 했습니다. 문을 두드리려다가 멈췄습니다.

그때, 문이 열렸습니다.

시원이가 서 있었습니다. 한솔이만큼 놀란 얼굴이었습니다.

"……."

"……."

둘이 서로를 보았습니다.

"……뭐야, 너도 안 잤어?"

시원이가 물었습니다.

"응…… 잠이 안 와서."

"나도."

"형도 나한테 오려고 했어?"

"……응."

둘이 복도에 나란히 섰습니다. 한참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솔이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형…… 아까 미안해."

시원이가 한솔이를 보았습니다.

"……나도. 블록 내가 조심했어야 하는데. 그리고 '다시 쌓으면 되잖아'는 너무 쉽게 말한 것 같아."

한솔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도 너무 화냈어. 형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

"……화날 만했어. 한 시간이나 쌓은 건데."

둘이 서로를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작게 웃었습니다.

"……우리 왜 이렇게 오래 싸웠지?"

"몰라. 먼저 말하기 싫었어."

"나도."

시원이가 웃었습니다.

"바보 같다, 우리."

"응."


둘이 거실로 나왔습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창밖으로 달이 보였습니다. 마당의 약속 나무가 달빛을 받고 있었습니다.

한솔이가 말했습니다.

"형, 오늘 혼자 있으니까 이상했어."

"……나도."

"화는 났는데, 형이 없으니까 허전했어."

시원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도 책 읽는데 집중이 안 됐어. 자꾸 네 방 쪽을 보게 되더라."

한솔이가 웃었습니다.

"형도?"

"응."

한참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아까까지의 무거운 기분이 조금씩 풀렸습니다.

시원이가 말했습니다.

"한솔아, 다음에 또 싸우면…… 오래 싸우지 말자."

"어떻게?"

"모르겠어. 근데 오늘처럼 하루 종일 말 안 하는 거, 힘들었어."

한솔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도. 다음엔 빨리 말하자. 화나면 화난다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알았어. 약속해."

"응. 약속."

한솔이가 시원이 어깨에 기댔습니다.

"형."

"응?"

"나 내일 블록 다시 쌓을 거야."

"……그래?"

"응. 형이 도와줘."

시원이가 웃었습니다.

"알았어. 같이 쌓자."

"이번엔 더 높이. 내 키보다 높이."

"그래. 더 높이, 더 튼튼하게."

한솔이가 눈을 감았습니다. 형 옆이 따뜻했습니다. 잠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시원이도 눈이 감겼습니다. 동생이 옆에 있으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싸운 날은 힘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다시 얼굴 보고 이야기하니까 괜찮아졌습니다.

형제는 소파에서 나란히 잠들었습니다. 창밖으로 달빛이 둘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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