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아파요

by 보통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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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습니다. 마당의 약속 나무에는 새싹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겨울 내내 가지만 있던 나무가 조금씩 초록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어느 월요일 아침 한솔이가 일어나서 형제 방으로 갔습니다. 평소처럼 형을 깨우려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형, 일어나." 시원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불속에서 작게 신음 소리만 났습니다.

한솔이가 가까이 다가가니 형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엄마가 들어왔습니다. 형 이마에 손을 대보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열이 많이 나네. 오늘은 학교 못 가겠다."

"형 학교 못 가?" 한솔이가 물었습니다.

"응, 형은 쉬어야 해. 한솔아, 학교는 혼자 가자." 한솔이는 잠깐 멈췄습니다.

"……형 없이?"

엄마가 한솔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솔이는 형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원이는 눈을 감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평소의 형이 아니었습니다.

"괜찮아. 길 알잖아." 엄마가 말했습니다.

"……응." 한솔이는 거실로 나와 아침을 먹었습니다. 밥을 떠먹는데 손이 자꾸 멈췄습니다. 형이 없는 식탁이 이상했습니다.


학교 가기 전 현관에서 한솔이는 잠깐 멈춰 섰습니다. 평소 형이 먼저 신발을 신고 문을 열어주던 것이 떠올랐지만 오늘은 혼자였습니다.

문이 조금 열려 있는 형 방문 안을 보니 형이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습니다. 한솔이가 가방을 메고 서 있는데 형이 작게 말했습니다.

"한솔아……" "응?" "길은…… 알지?" 한솔이는 잠깐 형을 바라보았습니다. 형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약했습니다.

"응. 알아." "조심해서 가." "……응."

한솔이는 문을 나섰습니다. 대문을 닫고 혼자 길을 걸었습니다. 평소 형과 같이 걸었던 길이었습니다. 같은 골목을 지나고 같은 모퉁이를 돌았습니다. 같은 가게들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길이 좀 달라 보였습니다. 길 자체가 바뀐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좀 더 길어진 것 같았습니다.

학교까지 가는 동안 한솔이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형이 따라오는 건 아닌지. 하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떠들며 놀고 있었습니다. 한솔이는 평소 형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비어 있었습니다.

친구 민재가 다가왔습니다.

"한솔아, 형은?" "……오늘 아파서 안 왔어." "그래? 형 없으니까 심심하겠다." 민재가 말했습니다.

한솔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형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형이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열은 좀 내렸을까.


수업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지나갔습니다. 한솔이는 창밖을 보며 형 생각을 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봤는데 형이 안 보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복도에서 마주쳤을 텐데 오늘은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점심을 먹고 운동장으로 나왔습니다. 체육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팀을 나누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둘씩 짝을 지었습니다. 한솔이는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짝이 없었습니다.

"한솔아, 오늘은 민재네 팀이랑 하자."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이 한솔이 쪽으로 굴러왔습니다. 한솔이는 공을 보며 잠깐 망설였습니다. 그때 형이 하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모르면 먼저 해보면 돼."

한솔이는 공을 찼습니다. 민재가 받아서 골을 넣었습니다.

"한솔아, 잘했어!" 민재가 소리쳤습니다.


학교가 끝났습니다. 한솔이는 집으로 걸었습니다. 길이 아까보다 짧게 느껴졌습니다.

길가에 작은 노란 꽃이 핀 곳을 지났습니다. 한솔이는 멈춰 섰습니다. 형 생각이 났습니다. 한솔이는 꽃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꺾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집에 도착해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의 약속 나무가 보였습니다. 새싹이 좀 더 자라고 있었습니다.

현관에 들어서니 엄마가 있었습니다.

"잘 다녀왔어? 형은 좀 나아졌어. 방에 있어."

한솔이는 형제 방 문을 열었습니다. 시원이가 이불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보다 얼굴이 덜 빨갰습니다.

"형." "왔어? 학교 어땠어?" "괜찮았어. 체육 시간에 민재랑 같이 팀이었어." "골 넣었어?" "민재가 넣었어. 근데 내가 공을 차 줬어." 시원이가 작게 웃었습니다.

한솔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꽃이 만져졌습니다.

"형, 이거." 한솔이가 꽃을 꺼내서 형 앞에 놓았습니다. 시원이는 꽃을 보았습니다.

"……고마워." "길에 있었어."

시원이는 꽃을 가까이 두었습니다. 한참 동안 둘은 말이 없었습니다.

"한솔아." "응?" "오늘…… 혼자 잘했잖아." 한솔이는 형을 보았습니다. 형이 조금 웃고 있었습니다.

"근데 형 없으니까…… 좀 이상했어." 한솔이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어떻게?" "길이 더 길어 보였어. 그리고 학교에서도 형을 한 번도 못 봤어." 시원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일은 나을 것 같아." "진짜?" "응. 열도 많이 내렸어." 한솔이는 안도했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시원이는 여전히 방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죽을 끓여서 형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한솔이는 마당에 나갔습니다. 약속 나무 아래에 앉아 하늘을 보았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발소리가 났습니다. 시원이였습니다. 이불을 걸치고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형, 나와도 돼?" "괜찮아. 좀 답답해서." 시원이가 한솔이 옆에 앉았습니다.

둘은 한참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나무를 보았습니다. 새싹이 바람에 살랑거렸습니다.

"형." "응?" "내일도 아파?" 시원이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마 아닌 것 같아. 많이 나았어." "다행이다." "왜?" "……그냥. 형 없으니까 이상해서."

시원이는 동생을 보았습니다. 한솔이는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근데 한솔아." "응?" "너 오늘 혼자 잘했어. 진짜로." 한솔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작게 웃었습니다.

둘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이 한솔이한테 어떤 날이었는지. 혼자 할 수 있다는 것과 그래도 형이 있는 게 좋다는 것.

하늘에 별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약속 나무의 새싹은 바람에 흔들리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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