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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Sep 03. 2021

싸복이남매와
주니, 미니의 위험한 동거

나는 대 식구를 거느린 가장이다

우리 집 뒤뜰에는 총 6마리의 고양이들이 산다.


태희네 육 남매 중 남은 강이, 탄이, 신비와 세 마리 새끼를 모두 잃은 비운의 어미 고양이 예삐, 이렇게 4마리가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고, 다른 한 구역에는 주니와 미니 남매가 살고 있다. 태희네 육 남매와 주니 미니 남매 모두 우리 집에서 태어났고, 이후 엄마가 집을 떠난 이후 자연스럽게 뒤뜰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가 떠난 태희네 육 남매와 새끼 잃은 예삐가 자연스럽게 한 가족(?)을 이루었고, 역시 엄마가 떠난 주니와 미니 두 남매가 오손도손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자신들만의 돔 집 안의 미니, 주니 남매. 둘이서 오손도손 아주 사이가 좋다

이중 강이, 탄이, 예삐 트리오와 신비는 좀처럼 앞마당으로 진출하는 일이 드물다. 주로 머무르는 구역이 앞마당과 많이 떨어져 있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집 앞마당은 언제 어느 때 시끄럽고 커다란 개(행복이)와, 작지만 기세가 맹렬한(?) 개(싸이)가 출현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구역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깥출입이 잦은데, 오가는 모습을 통 볼 수 없는 걸 보면, 바깥출입을 할 때도 앞마당을 통하기보다는 뒤뜰의 대숲을 통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뒤뜰 냥이 경력 3년 차니 아마도 자연스럽게 터득한 자신들만의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 싶다.


퇴근길에 마주친 주니, 미니 남매. 이젠 날 보고도 도망가지 않을만큼 담대해졌다

이런 강탄예삐 트리오+신비와는 다르게 비교적 아직 일 년이 채 안된, 신입 뒤뜰 냥이인 미니 주니 남매는 우리 집 앞마당에 모습을 자주 드러낸다. 바깥출입을 할 때도 굳이 먼 길을 돌아(자신들 집 앞에서 울타리만 넘으면 바로 밖이다) 앞마당을 거쳐 나가고, 심지어 때때로 앞마당에서 노닐기도 한다. 주말 한낮 거실에 앉아있다 보면 한 번씩 주니 미니가 나와 앞마당에서 놀곤 한다. 벌레도 쫓고 둘이 장난도 치면서.


벌레쫓는 주니, 마당에서 노니는 미니, 가끔 앞마당으로 진출해 놀기도 한다

주니 미니 남매의 앞마당 놀이는 그리 오랜 시간 이어지지 못한다. 얼마 안 가 집 안의 싸복이 남매에게 발각되기 마련이고, 싸복이 남매가 우렁차게 짖어대면 주니 미니 남매는 소리만으로도 놀라 꽁지 빠지게 도망가기 때문이다. 고양이라면 아주 지랄발광(?)을 하는 싸복이 남매는 가히 미칠 노릇일 것이다. 산책하다 고양이를 만나도 일단 쫓아가고 보는데, 번듯한 내 구역(앞마당)에서 노니는 고양이 두 마리 라니. 싸복이 남매 입장에서는 이 보다 더 황당한 일이 있을까 싶다.



너, 작은 고양이, 도대체 뭐냐?  그럼 너, 커다란 생명체, 너는 뭔데?

안 그래도 주니 미니 남매가 기거하는 돔 하우스는 앞마당과 뒤뜰의 연결 부분에 있어서 싸복이 남매의 눈에 띄기도 훨씬 좋다. 구중궁궐 깊숙한 뒤뜰에 숨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강탄예삐 트리오+신비와는 다르게, 주니 미니 남매는 싸복이 남매와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동거 아닌 동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뒷모습이 참 간절하죠. 어멍은 볼 때마다 빵 터집니다. 등치가 커도 겁이 많아 저 낮은 울타리를 못 넘어갑니다 ㅋㅋ

주니 미니 남매가 어릴 적에는 겁도 많고 낯을 많이 가려 내 눈에도 쉽게 띄지 않았다. 그런데 주니 미니 남매가 성인이 되고, 또 나와도 제법 낯을 익히고 보니 이제는 싸복이 남매 눈에 뜨일 일도 많아졌다. 자주 마주쳐 주니 미니 남매의 존재를 잘 아는 싸복이 남매도, 이제 마당에만 나오면 바로 뒤뜰과 면한 울타리로 가서 주니 미니 남매의 동태를 살피기 바쁘다. 주니 미니 남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귀신같이 존재를 알아채기도 하고, 종종 모습이 보이는 날엔 아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부린다.


아예 장기전으로 돌입했습니다. 이쯤 되면 어쩌면 행복이는 주니 미니를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ㅋㅋ

싸복이 남매를 보고 놀라 기겁하던 주니 미니 남매도, 이제는 싸복이 남매가 울타리를 넘어올 수 없다는 것을, 우렁찬 목소리와 거대한 등치에 비해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싶다. 엊그제 산책에서 돌아오니 미니가 앞마당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예전과 다르게 어느 정도만 도망가서는 자리를 잡고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예전 같으면 꼬리도 보이지 않게 도망갔을 텐데 말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미니, 정말 많이 컸네.


오늘은 싸이도 함께네요. 동태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어요

엄마 소금이가 집을 떠난 후, 어린 주니 미니 둘만 남은 모습이 많이 안쓰럽고 애틋했다. 이젠 어엿한 성인이 다 되었고, 다른 뒤뜰 냥이들과도 잘 지내고, 또 예전보다 나를 훨씬 덜 경계하니(심지어 미니는 얼마 전부터 나를 보고 눈키스를 보내곤 한다. 이렇게 영광스러울 데가), 내 마음이 많이 흐뭇하다. 싸복이남매와 주니미니 남매의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동거도 이제 우리들만의 평범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통조림 먹느라 어멍이 사진을 찍는지 어쩐지 정신 못 차리고 있네요

싸복이 남매가 뒤뜰 냥이들을 보고 환장(?)할 때마다 나는 점잖은 목소리로 말한다. '쟤들도 우리 식구야. 이젠 그걸 알 때도 되지 않았어?' 하고. 집 안에는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 뒷마당에는 뒤뜰 냥이, 자주 볼 순 없어도 우리 집 근방 동네 길냥이들까지. 모두 다 내 주머니에서 나온 밥을 먹고 있으니 한 식구인 셈이 아닌가. 


그거는 니 밥이 아니여. 냥이들 밥이여. 헉, 어멍, 내 밥하고는 사이즈가 다르네

누가 나더러 1인 가구라고 하는가. 우리 집은 대 가족인 셈이다. 나는 대 식구를 거느린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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