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한 사고뭉치 아기 행복이
행복이는 딱 2개월일 때 우리 집에 왔다.
돈을 주고 개를 물건 사듯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던 철없던 시절, 돈을 주고 간 강아지를 30여 일 만에 홍역으로 떠나보내고도 나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행복이를 또다시 돈을 주고 사 왔다. 지금 생각하면 저리도 어리석었던 나 스스로가 참으로 부끄럽다. 평생 내 아이를 가져볼 일이 없는 나는, 어린 강아지에 눈이 멀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로망이었던 '골든 리트리버'에 대한 집착도 버리기가 힘이 들었다.
어린 강아지를 자식 대신 키워보겠다는 무식한 욕망에 대한 대가는 참으로 컸다. 아기 행복이는 정말 대단했다. 아기 행복이는 일단 무척 시크했다. 이전 강아지가 좀체 내 무릎에서 내려오지 않으려 했던 것과 비교해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무릎은 고사하고 나란 존재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었다. 서운하고 또 섭섭했다. 행복이는 아마도 '나는 너에게 아기 대신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기행복이의 관심은 오로지 어떤 식으로 사고를 칠 것인가를 향해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크기가 너무 작아 사고를 친대도 그다지 손해 날 것이 없었으나, 대형견답게 빛의 속도로 자라나면서 사고의 규모는 점점 커져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고의 규모만 커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차츰차츰 나에 대한 애정도 조금씩 커져갔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생각해 보면 까마득한 12년 전의 일들이다. 행복이를 떠나보낸 후,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핸드폰 사진을 조금씩 꺼내어 보는 중이다. 살면서 아기행복이 사진을 많이 찍어놓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아기행복이는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뻤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고를 많이 치는 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사진첩을 뒤지면서 그래도 제법 찍은 사진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나만 알고 있는, 아기 행복이의 모습을 다시 꺼내어보는 일이 참으로 흐뭇하다.
여자 혼자 힘으로, 마당 있는 집 살이를 하며, 두 마리 강아지를 함께 키우는 일이 녹록지 않았다. 저 시절을 돌이켜 보면, 울기도 많이 울었고, 힘든 순간들도 많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함께한 지 12년이 되었다. 행복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금, 저 12년의 세월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싸복이 남매와 함께한 시간들이 한 해 두 해 쌓여가며 나는 정말이지 많이 변화하고 성장했다. 1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할 만큼. 무엇보다 가장 좋은 변화와 성장은,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싸복이 남매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개를 돈 주고 사는 일이 당연한 일이고, 동네 길냥이들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그저 나란 존재만 소중한 그런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내가 제법 좋은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가 참으로 가소롭다. 아직도 철들려면 멀었지만(죽을 때가 되면 조금 철이 들려나), 어쨌든 희생이나 헌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그저 내 한 몸 건사하기 급급했던 나에게 싸복이 남매는 인생의 참스승이 된 셈이다.
철없는 철부지 엄마여서, 아기 행복이도 힘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한다고 하긴 했는데, 한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철없는 마음에 사고뭉치 행복이를 많이 혼낸 것도 마음에 걸린다. 철없는 엄마를, 조금이나마 철든 어른으로 만들어 준 행복이가 참 고맙다. 어쩌면 사고뭉치 아기 행복이는 하느님이 조금이나마 인간다워지라고, 내게 보내신 아기 천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시크했던 아기행복이도, 사고뭉치 아기 행복이도 너무 그립다.
나만 온전히 알고 있는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아기 행복이가.
아기 행복아, 잘 지내고 있니. 강아지별에서도 철딱서니 없는 사고뭉치로 지내고 있을까. 어리고 철없지만 한없이 소중하고 귀한 존재였던 솜털 가득했던 어린 너를 영원히 기억할게. 거기서도 이름처럼 만큼만 행복하렴. 나중에 다시 만날 땐, 환하게 웃으며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