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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Nov 24. 2017

'뭉치'는 집냥이가 될 수 있을까

중성화 수술을 해 준 이후에도 뭉치는 여전히 우리 집에 눈도장을 찍었다. 


아침에 길냥이들 밥 주러 갈 때에는 만날 때도 있고 못 만날 때도 있고, 주말에 집에 있을 때는 한낮에도 종종 마주치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과감하게 우리 집 앞마당에 진출해 데크에 앉아 한참을 졸다가 간 적도 있다. 그러다가 싸복이 남매에게 쫓기는 험한 꼴을 당하기도 하면서. 뭉치는 그렇게 앞집과 우리 집을 오가며 지냈다. 


종종 앞 집과 우리 집 사이에서 망중한을 즐기곤 하는 뭉치,  그런 뭉치와 대치중인(?) 싸이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길냥이들을 위해 보일러실도 오픈형(?)으로 바꾸고, 일 년 전에 만들어 놓은 길냥이 집을 손보는 작업 중이었다. 어느샌가 뭉치가 나타나 내 곁을 맴돈다. 그러다가 한참 공사 중인 길냥이 집으로 쏙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졸기 시작한다. 앞집에는 쉴 만한 공간이 없는 건가 싶어 안쓰러웠다. 바깥 집보다는 오픈형으로 바꾼 보일러실이 그래도 더 따뜻할 듯싶어 보일러실 안에도 집을 넣어두고 먹을거리를 놓아두었다. 뭉치 아니라 어떤 길냥이라도 추운 겨울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앞마당까지 진출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인데, 볕이 좋았던 어느 주말 한참을 머무르다 갔다.

언젠가부터 밤에는 우리 집에서 자는 것 같았다. 밤에 보일러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가보니 뭉치가 사료 봉지에 구멍을 뚫는 소리였다. 어떤 날은 두 마리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 가보면, 늘보와 뭉치가 대치 중이기도 했다. 아침에 밥 주러 나가보면 보일러실에서 나오기도 한다. 며칠이 지났을까. 이후에는 뒤뜰에 만든 집에서 뛰어나와 나를 반긴다. 길냥이 늘보에게 밀려서 보일러실은 뺏긴 듯했다. 겹겹이 싸맸다 해도 실내보다는 확실히 추울 텐데. 집냥이 었음이 분명한 뭉치가 올 겨울을 견뎌낼 수 있을까. 또다시 고민은 시작되었다. 


앞집에서 묶어준 리본을 맨 뭉치,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미묘'인건 틀림없는 사실

열심히 집을 개보수중이었는데 쏙 들어가 낮잠을 청하는 뭉치, 여기가 네 집이로구나

아침이면 내가 부르는 소리에 쪼르르 달려 나오는 뭉치, 이 날은 앞에 '늘보'가 버티고 있어 무서웠던지 나오지 않고 고개만 쏙~

뭉치를 집에 들여야 하나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기 이전부터 고민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길냥이 생활이 어느 정도 몸에 익은 뭉치를 강제로 집안에 들이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길냥이를 집에 억지로 들이는 것도 동물학대로 규정하기도 한다. 집냥이를 밖에 유기하는 것도 잔인한 일이지만 길냥이로 살던 아이를 집에 가두는 것 또한 같은 학대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뭉치는 지금의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뭉치 속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통조림 시식 중인 뭉치 씨, 숨어있는 1인치 '인절미' 숨은 그림 찾기

그러다 우연찮게 뭉치의 세 마리 새끼와 마주쳤다. 뭉치가 자기 새끼에게 하악질을 한다. 정을 떼려 하는구나 싶었다. 새끼들 피해서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추측했다. 그렇다면 일단 집에 들여보자. 우리 집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일단 시도는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뭉치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당분간은 밖에 나갈 수 없도록 하겠지만 싸복이남매를 위해 오픈형으로 지내는 우리 집에서 언제까지나 문단속을 철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밖으로 나가겠다면 뭉치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휴식 중인 걸까? 생각 중인 걸까? 내가 뭉치를 억지로 집에 들인 일은 과연 잘한 일일까.

그.래.서. 뭉치는 지금 우리 집에 있다. 납치 아닌 납치중이다. 딱 1주일이 지났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나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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