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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Apr 16. 2018

뭉치, 자유로운 영혼의 고양이

주말이 되었다. 나는 결심한 대로, 뭉치가 밖에 나갈 수 있도록 창문을 개방했다.


고민에 또 고민을 했다. 뭉치에게 외출을 허락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러다 과감하게 결심했다. 뭉치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다른 수많은 걱정들은 뒤로 하고 단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지켜야 하는 당연한 원칙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 그것이 비록 그 대상에게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첫 번째, 뭉치가 집을 영영 나가버리면 어쩌지? 두 번째, 뭉치에게 무슨 사고라도 생기지 않을까?' 2가지 큰 걱정을 뒤로한 채, 문을 개방한 지 어언 3주 차가 되어간다. 


집 안에서는 가끔씩 살갑게 굴기도 하는데, 밖에서는 쌩~ (불러도 모른 척 함) 아주 모르는 고양이가 된다.

첫 번째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에 불과했다. 뭉치는 지난 4개월간의 감금생활(?)로 인해 우리 집을 자신의 집으로 완전히 받아들인 듯하다. 3주 동안 지켜본 결과 밥도 집에서 먹고, 쉴 때도 집에서, 잠도 꼭 집에서 잔다.(뒤뜰에 무한리필 고양이 사료가 있으므로 꼭 집밥을 먹어야 할 필요는 없다) 뭉치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자. 새벽시간에 외출을 나간다. 한 3~4시쯤. 5시 30분쯤에 아침을 주는데 이때쯤은 집에 들어온다. 밥 먹고 잠시 쉬다가 출근할 때쯤은 대개 보이지 않는다. 대략 11시쯤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 달고 긴 낮잠을 잔다. 퇴근하면 그때까지 자고 있을 때도 있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이후 저녁 먹고 다시 잠시 외출. 일찍 들어오면 7시 30분쯤, 늦어도 9시를 넘기지 않고 들어와서 잠이 든다. 그 뒤로는 새벽까지 쭈욱 취침. 조금씩 달라지긴 해도 대체적으로 이런 패턴이다.


몇 번 담 밖에서 마주치기도 했는데, 내가 부르면 (아주 한 술 더 떠서) 아예 도망간다 ㅠ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런지)

주말에는 도대체 어디를 싸돌아 다니는지 유심히 지켜보기도 하는데 어디 멀리 가는 거 같지는 않고 대개는 집 근처에서 돌아다니는 것 같긴 하다. 지난 주말에는 마당에서 오랜 시간 노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목에 매 준 스카프가 완전히 꼬질꼬질 해지고, 발바닥이 새까매진 채로 돌아오기도 하는데, 나는 그저 어디 가서 신나게 놀았나 보다 하고 추측할 뿐이다


걱정스런 마음에 누가봐도 소속(?) 있는 애로 보이도록 때론 리본, 때론 스카프를 꼭 매어서 내보낸다. 아예 이름도 박았다 ㅎㅎ

뭉치가 외출 냥이가 되면서 생긴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 첫째, 이제 더 이상 집안에 오줌을 싸지 않는다. 고양이 화장실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간의 '오줌 테러'는 아마도 '밖으로 나가게 해 달라는' 무언의 시위가 아니었나 싶다. 두 번째, 뭉치가 훨씬 성격이 좋아졌다. 까칠함도 덜 해졌고, 밤중에 나를 괴롭히는 일도 없어졌다(밤마다 머리를 밟고 다니고, 꼭 머리에만 꾹꾹이를 하며ㅠㅠ, 때론 목에 턱 걸터앉아 자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참, 가지가지한다' 싶었는데, 이 역시도 일종의 시위였던 셈이다. 길냥이 시절의 생활이 불행했을 거라는 생각은 철저하게 나 중심의 시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뭉치는 바깥세상이 너무너무 좋다. 이 근방을 놀이터 삼아 지냈던 그 시절이 행복했던 거다. 뭉치는 어쩌면 태생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고양이 일는지도 모르겠다.


뭉치거 사는 김에 싸복이 남매도 사줘보았다. 어머~ 어쩜 이렇게 안 어울릴 수가 ㅋㅋ 싸복이 남매는 그냥 패쑤~ 하는 것으로 ㅋㅋ

뭉치가 외출 냥이가 되면서 마음 한편이 편해지기도 했지만, 반면 새로운 근심과 불안이 생겼다. 이곳이 도시와는 다르다 하더라도 바깥세상이 뭉치에게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뭉치는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이상한 사람에게 공격을 당할 수도, 쥐약 같은 걸 먹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집에 퇴근했을 때, 뭉치가 집에 없으면 들어올 때까지 마음이 많이 불안하다. 9시가 다되도록 안 들어올 때는 특히 더 심란하고. 뭉치는 집에 들어올 때, 작은방에서 거실로 넘어오면서 나를 보고 아주 작게 '냐옹~' 하고 소리를 내는데(마치 인사하듯이),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멍~ 나 집에 들왔어~'라는 일종의 신호인 셈이다.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싸악~ 사라졌던, 길냥이 시절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바로 그 모습이다.


방석은 그저 오줌 싸는 데였는데ㅠㅠ 이제 제 용도를 찾았구나. 어째 너희들 자는 모습도 닮아가는 게 점점 가족이 되어가는가 보다.

나의 선택에 옳았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 어쩌면 누군가는 나를 비난할 수도 있겠다. 가장 두려운 건, 어쩌면 나는 뭉치를 잃고 나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혹여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온전하게 그 고통을 받아들이겠다는 심정으로 선택을 내렸다. 결과는 하느님만이 아시겠지. 이게 최선이라고, 잘한 일이라고 믿어보고 싶다. 


뭉치야~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이 근처에서만 놀아라. 알았지?


밖에서 모른 척(?) 할 때는 언제고 안에서는 이렇게 여시 짓을 한다. 이래서 고양이를 요물이라고 하는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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