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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May 02. 2018

뭉치라 쓰고, '꼴통'이라고 읽는다

솔직하게 말해, 뭉치가 오줌을 못 가리는 것도 외출을 허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이불이나 방석에 싸는 건 그나마 괜찮았다. 어느 날 우연히 오줌 싸는 현장을 발견했는데, 서서 오줌을 싸는 거다. 서서 오줌을 싸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나는 정말이지 기함하는 줄 알았다. 이불, 커튼, 매트리스까지 총체적으로 오줌이 튀었다. 오 마이 갓.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왜 창틀에도 오줌이 묻어있는지. 그렇게 열심히 빨아제끼는 데도 왜 냄새가 어딘가에 남아 있는지. 또, 결정적인 오줌 테러를 당한 적도 있다. 때는 새벽녘. 자는 데 얼굴에 물기가 촤악~ 하고 튄다. 자는 와중에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거 뭉치 쉐끼 오줌이구나~" 싸이와 내가 자고 있는 침대에 서서 오줌을 싼 것이다. 싸이도 함께 홀랑 오줌을 뒤집에 썼는데, 마침 그날이 싸복이 남매를 목욕시키기로 한 날이어서 망정이지, 아니면 나는 정말 뭉치를 한 대 때릴 뻔했다. 


너, 오줌싸개 고양이~ 뭉치~ '카리스마 눈빛' 장난 아니구나 ㅋㅋ

외출 냥이로 지내면서 저 버릇은 싹 사라졌으니, 저것은 '밖에 내보내 주지 않는' 나를 향한 보복이자 테러임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외출시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는 비가 오는 날, 걱정스러운 마음에 잠시 외출을 제한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거실에 오줌 테러를 가했다. 덕분에 한 번도 빨일 없었던 거실 커튼을 뜯어서 빨아야 했다. 드라이를 맡길 정신이 없어서 그냥 물세탁을 했더니 커튼은 껑충 짧아져 아주 우스운 모양새가 됐다. 어쨌든 저 사건으로 오줌 뿌리기는 보복이자 테러임을 다시 한번 확인 사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안방 침대에서, 때론 나의 소중한(?) 청바지 위에서 주무시는 뭉치씨. 요즘 그렇게 안방을 좋아한다.

나는 가끔 이런 뭉치가 청설모처럼 보였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도 나름 싫어하는 동물이 몇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청설모다. 색깔도 비슷해서, 뭉치가 꼴통 짓을 할 때면 완전히 청설모 같았다. "저놈의 저 청설모 꼴통 쉐키~" 같은 험한 말을 그동안 입에 담고 살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정말 열불이 났을 때, 슬리퍼로 바닥을 치면서 큰소리로 혼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조금 뒤에 슬쩍 다가와 안기며 친한 척하더니, 잽싸게 내 팔뚝을 세게 물고 도망을 쳤다. 일종의 복수였던 셈이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그렇게 밉지많은 않았으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 따로 없다. 고양이한테 완전히 홀린 격이다. 


너는 살찐 청설모냐? 고양이냐? 정체가 무엇이냐?

뭉치가 외출 냥이가 되면서 새로운 사건이 생겼다. 바로 쥐를 물어오는 것. 어느 날이었다. 퇴근해서 들어왔는데 쥐로 추청 되는 물체가 보였다. 나는 현실을 부정했다. '설마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저건 나뭇잎이겠지. 나뭇잎일 거야."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그건 바로, 쥐가 맞았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실성한 웃음이다.) 첫 번째가 쇼킹했지,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니 그나마 많이 무감각해졌다. 집에 들어왔을 때 쥐의 사체가 떡하니 있으면 그냥 조용히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와 치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보통의 상식적인 여인네들과는 좀 달라서 벌레도 안 무서워하고, 쥐도 그렇게까지 무서워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래도 죽은 쥐를 처리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뭉치 덕에 별의별 경험을 다해 본다. 차라리 선물이라면 괜찮겠는데(고양이가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사람에게 쥐를 물어다 주기도 한단다), 입에 물고 좀처럼 뺏기지 않으려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이제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도 같다. 고양이가 원래 사냥 본능을 가지고 있는 야생동물이라고 하니 뭐 별 수 있겠는가. 요즘엔 외출에서 돌아오는 뭉치를 보며 농을 건넨다. "뭉치~ 오늘은 사냥에 실패했나 보네. 어째 빈손인고?" 하고. 


뭉치가 입에 쥐를 물고 왔어요~ 싸복이 남매가 호기심에 몰려들었죠. 뺏으려는 줄 알고 요상한(?) 그르릉 소리를 내더라고요. 

뭉치가 꼴통으로 보일 때가 또 있다. 뭉치의 세 마리 새끼 중 몽이라는 남아가 요즘 우리 집 뒤뜰에 살고 있는데, 가끔 뭉치와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러면 뭉치가 어김없이 다가가 퍽~ 하고 펀치를 날린다. 매번 그러니 몽이는 뭉치만 보면 겁을 먹고 슬금슬금 도망을 친다. 새끼 내치고 우리 집으로 피난 왔는데(길냥이들은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살기 위해 버린다), 새끼가 또 따라온 꼴이니 뭉치 입장에선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렇게 매번 펀치를 먹여야 하나 싶다. 이럴 때 보면 정말 꼴통 중에 상꼴통인 것 같다. 


새끼인 '몽'과 함께 있는 뭉치. 정확이 말하면 바깥에서 일하는 내 곁을 몽이가 맴돌았고 이때 뭉치가 슬금슬금 다가온 것. 

길냥이 었던 뭉치와 함께한 지 5개월 여,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뭉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뭉치가 나를 간택(?)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뭐랄까. "집사 너~, 나한테 딱 걸렸어. 내가 너네 집 좀 써야겠어. 어, 물론 밥도 네가 차려야지~ 나랑 살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해~" 이런 느낌. 내가 요즘 거실에서 잠을 자 안방이 비었는데, 오줌을 싸지 않아서 안방 문을 열어주었더니 안방 침대에 떡 허니 누워 잠을 잘 때가 많다. 특히 이럴 땐, 뭉치가 집주인이고 내가 세입자인 것 같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랄까. 뭐, 이제와 무를 수도 없고, 나가란다고 나갈 거 같지도 않고, 그냥 집사 역할에나 충실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뭉치 모습이다. 이 모습이 정말 이쁘다^^

이상하게 코가 꿰인 셈인데 그렇게 싫지만은 않으니, 뭉치가 나한테 무슨 마법이라도 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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