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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ul 06. 2018

뭉치 수난시대

뭉치가 외출 냥이로 변신한지도 4개월 여가 되어간다. 


나는 걱정이 많이 되긴 하지만 생각보다 외출 냥이 뭉치와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뭉치는 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 날이 더워지면서 밤에 외출하는 시간이 길어져 좀 더 마음이 쓰이긴 한다. 그래도 꼬박꼬박 하루에도 몇 번씩 집안에 방문(?) 도장을 찍고, 밤에는 짧은 시간이라도 내 곁에서 잠을 잔다. 그런대로 일상은 평화롭게 굴러가던 중이었다.


야외 테이블 위에서 한참 노닥거리다, 내가 안방에서 창문을 열고 아는 척을 하니 뻔히 쳐다본다. 

그런데 어느 날, 뭉치의 한쪽 눈이 유난히 부어있다. 어라~ 어제까지 멀쩡했었는데. 지체 없이 병원으로 데려가니 결막염이란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이틀을 지켜봤는데 차도가 전혀 없다. 불안해진 나는 일요일 오전에 다른 병원을 방문한다. 마침 엄마가 월요일에 수술 예정이라 일요일 오후부터 화요일까지는 간병이 예정되어 있었다. 월요일 이후에는 뭉치를 병원에 데려갈 시간이 없었다. 다른 병원에서 각막염이 아니고 각막에 구멍이 났단다. 산으로 들로 쏘다니다가 어딘가에 찔린 것이다. 손상된 각막에 결막염 약을 쓰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래서 사람도, 동물도 한 병원만 다니면 안 되는가 보다. 3개의 약을 주면서, 하루에 적어도 5분 간격으로 최소한 4번을 눈에 넣어주라고 한다. 당분간 밖에는 내보내지 말라면서. 덧붙여 얘기한다. 6~7번쯤 많이 넣어줄수록 더 빨리 나을 거라고. 빠른 회복은 보호자의 의지에 달렸다고.


평소에 이 창문으로 나갈 수 있었는데 ㅠㅠ

아, 어찌한다. 화요일까지는 꼼짝도 할 수 없는데. 하루에 2~3번도 넣어주기 힘든 판국에 6~7번이라니. 고민 끝에 뭉치를 아는 지인의 집에 맡겼다. 다행히 뭉치가 다소 쌀쌀맞긴 해도, 낯은 가리지 않는 편이고, 이전에도 돌봐준 적이 있던 지인이다. 외출을 제한하면 오줌싸개가 되는 것이 맘에 걸렸지만 별 수 있나. 그렇게 5일 동안 뭉치는 친구 집 신세를 졌다. 다행히도 눈은 수일 내로 호전이 됐다. 친구 집 매트리스에 오줌을 싸서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어서 그렇지. 그런데 눈에 약을 넣는 과정에서 발톱으로 얼굴에 생채기를 냈다. 상처가 제법 커서, 눈이 나았는데도 외출도 못한 채 며칠 더 깔때기를 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야흐로 뭉치 수난 시대였던 셈이다.


'현관문이라도 열어다오'~라고 시위하다 잠든 뭉치

뭉치는 깔때기가 묘생 처음인지라, 극히 우울해했다. 첫날은 외출했다 돌아오니 나갈 때 자세 그대로 미동도 안 한 채였다. 밥도 입에 대지 않았다. 계속해서 잠만 잔다. 충격이 커 보였다. 외출까지 못하게 하니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이다.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 눈에 보여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강제로 붙잡혀 눈에 안약을 시도 때도 없이 넣어야 했으니, 뭉치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평소에 머리 빼고는 손대는 걸 극히 싫어하는 뭉치다. 저놈의 집사가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나 싶었겠지. 친구 집에서도 낯선 환경에 힘들었을 테고, 나는 살짝 불안해지기도 했다. 다시 외출을 시키면 이대로 영 집을 나가버리지 않을까 하고. 이놈의 집사가 너무 괴롭혀서 이 집구석에서 더는 못살겠다고 하면서. 


자고 자고 또 자고.. 계속해서 뭉치는 잠만 잤다.

다행히 얼굴의 상처는 금방 나았고 지난 화요일부터는 근 열흘만에 다시 외출 냥이로 되돌아갔다. 걱정과는 다르게 집을 아주 나가지도 않았다. 뭉치가 외출 냥이로 지내는 동안은, 이런 사고가 얼마든지 생길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뭉치가 원하는 데로 살게 해주는 것이 진정한 배려이자 사랑이라고 믿었던 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금은 흔들리기도 했다. 그런 마음을 애써 부여잡아 본다. 바깥세상 탐험을 좋아하는 뭉치를 집 안에 묶어둘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외출 냥이 뭉치의 생활은 나에게도 뭉치에게도 힘든 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불안할 테고, 뭉치는 늘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 생활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그게 최선이지 싶다. 다만, 뭉치가 이번처럼 다치는 일이 자주 없었으면 좋겠고, 또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이별이 갑작스러운 방식은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늙어가는 뭉치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깔때기도 습관이 되니 그럭저럭 편하지 않아?  뭉치야~ 앞으로는 좀 조심조심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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