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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Oct 01. 2018

뭉치가 고양이 별로 돌아갔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갑작스레 우리는 뭉치와 이별했다. 오늘은 너무 슬픈 이야기를 하려 한다.


지난 일요일(9/16)이었다. 바스락거리기만 해도 달려들던 츄르를 내밀었는데 뭉치가 먹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평소와 다르게 츄르를 좀 남겼다. 밥도 별로 줄지 않았다. 때는 아침나절, 뭔가 이상했지만 뭉치는 그날도 어김없이 외출을 나섰기에 괜찮겠지 싶었다. 아프면 안 나가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새벽에 나갔던 뭉치는 9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기운이 없다. 그래서인지 자는 내내 내 곁에 꼭 붙어 있다. 월요일에 병원에 데려갔다. 대장과 직장 사이에 무언가가 걸려있다고 했다. 고양이에게는 흔한 일이라고. 저절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내일까지 기다려서 내려가지 않으면 수술해야 된다고. 월요일에는 내내 미동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밤에는 상태가 더 안 좋아진 듯했다. 그날따라 유난하게 내 품을 파고들었다.


다음날 점심에 병원에 데려갔다. 수술을 결정했다. 헤어볼이 걸려 혹여 장이 많이 썩지만 않았다면 위험한 수술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저녁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의사샘의 목소리가 무겁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간수치가 너무 높다고 했다. 황달이 왔다고. 일단은 지켜보자고. 다음날 점심때 병원에 가보니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안 좋다. 의사쌤이 말한다. 자신의 경험상, 간수치가 높으면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저런 말을 듣긴 했어도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뭉치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너무 짧은 시간 안에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뭉치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마침 나는 그날(수요일) 너무 바빴다. 도서관에 행사가 있었고, 저녁에는 독서토론에 야근까지 있는 날이었다. 병원에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짬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근하는 날엔 보통 한 시간 외출을 달고 집에 가서 싸복이 남매의 밥을 챙겨주고 온다. 나에게는 한 시간의 외출시간이 있었다. 친한 학생에게 싸복이 남매의 저녁을 부탁하고 그 시간에 병원에 다시 갔다. 점심때는 축 늘어져 있던 뭉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병원에 머물렀던 40분 내내 계속해서 '냐옹~'소리를 낸다. 이때만 해도 나는 아파서 그런 건가, 기운을 내려고 그런 건가 했다. 뭉치는 원래가 잘 '냐옹~' 거리는 고양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뭉치는 내가 병원을 떠나고 한 시간 후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뭉치가 끊임없이 '냐옹'거렸던 건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술 전날의 뭉치의 모습이다. 물도 전혀 먹지 못하고 내내 잠만 잤다.

독서토론을 진행하느라고 의사의 전화를 받지 못했고, 내가 전화했을 때 이미 의사는 퇴근한 후였다. 내일 아침에 오라는 의사에게 차마 '지금 내 새끼를 데려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뭉치는 다음날 아침에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나를 대신해, 친한 직장동료들이 뭉치의 화장장을 알아봐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집에 돌아온 뭉치는 싸복이 남매와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도도해서 내 품에 별로 안기지 않았던 뭉치를, 죽은 후에야 원 없이 안아 볼 수 있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가뜩이나 전날에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휘청거렸던 나는 정신줄을 놓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마음속으로 내내 생각했다. '뭉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씩씩하게 지켜줘야 한다. 쓰러져서는 안 된다. 뭉치를 잘 보내줄 수 있다' 이렇게. 


뭉치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수요일, 그리고 화장을 한 목요일엔 내내 비가 내렸다. 하늘도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토요일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뭉치를 앵두나무 아래에 묻어 주었다. 일부는 뭉치가 좋아하던 마당 곳곳에, 동네 어귀에, 뒷산에 뿌렸다. 아이들이 죽으면 앵두나무 아래에 묻어주어야지 하고 늘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다. 나도 죽으면 아이들과 같이 묻혀야지 그렇게. 뭉치를 위해 작은 돌무덤을 만들고 팻말을 세울 예정이다. 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그곳에서 나를 반겨줄 누군가가 생겼다. 죽음은 조금은 덜 두려운 일이 되었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 뭉치가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반겨줄 거라고.


마지막 밤의 뭉치 모습이다. 이때만 해도 나는 그저 셋이 함께 자는 모습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왜 그렇게 간수치가 높아졌는지 의사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밥을 며칠 못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장에 뭔가 걸린 것이 원일일 수도 있다고. 수술 전후에 다른 실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5년을 넘게 본 의사 선생님이고, 길냥이 들을 통해서 조금 더 가까워진 선생님이다. 놓친 부분이 있었다고 한들,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터였다. 더더군다나 원인을 따져 묻는다고 해서 뭉치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밥을 먹지 않던 일요일에 24시간 운영하는 2차 병원으로 데려갔으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외출을 허락지 않았다면 뭉치가 아픈 걸 좀 더 일찍 눈치챌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이것저것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그냥 믿을 수 없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줌의 재가 되어 뭉치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살아생전 늘 목에 걸고 있던 리본을 걸어 두었어요.

뭉치가 고양이 별로 돌아간 지 2주가 되어간다. 아직까지도 뭉치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뭉치는 외출 냥이였기 때문에 더더욱이 그렇다. 처음 며칠은 밤만 되면 싸복이 남매에게 중얼거렸다. '얘들아~ 뭉치가 들어올 시간이 지났는데 왜 안 들어올까?' '뭉치가 오늘은 좀 늦으려나 보네' 나는 아직도 뭉치가 언제라도 전용 출입문을 열고 '냐옹~' 반갑게 인사를 하며 들어올 것만 같다. 아니, 어딘가 나의 눈에 띄지 않는 집안 구석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는 것도 같다. 


우리 집은 나에게 마음의 안식처 같은 곳이었는데, 이제는 너무도 슬픈 장소가 되었다. 집 안 곳곳 어느 하나 뭉치의 흔적이 묻어있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뭉치가 없는 우리 집에 적응을 해 가고 있는 중이다. 뭉치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나 없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마. 삶은 원래가 만나고 이별하고 그런 거야. 우리 나중에 다시 꼭 만나자~ 그때는 내가 먼저 엄마를 알아볼게.'


나의 영원한 꼴통 뭉치야~ 엄마가 너를 참 많이 사랑했어. 나에게 다가와 빛이 되어주어서 너무 고마워. 넌 엄마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야. 언제까지나 오래오래 너를 잊지 않고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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