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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Oct 04. 2018

하늘이는 뭉치가 제게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입니다

하늘이를 집에 들이고 정확히 열흘 후에 뭉치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는 '하늘이'가 뭉치가 내게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인 것만 같다.


하늘이를 처음 보았을 때, '쿵이 새끼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생김새가 쿵이를 몹시 닮았기 때문이다. 뭉치는 길냥이 시절 '심이, 쿵이, 몽이'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여아인 쿵이와 심이를 중성화 수술시켜 주었는데, 쿵이는 이미 새끼를 낳은 후였다. 심이와 쿵이 둘 다 자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수술을 시켰다. 의사쌤이 젖을 물린 흔적이 있으니 얼른 풀어주라고 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나중에 앞집에 가서 물어보니, 앞집의 앞집(빈집)에 새끼를 낳았다고 한다. 그곳은 뭉치가 새끼들을 낳은 곳이기도 하다. 쿵이 새끼들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실 쿵이 얼굴도 보기 힘드니까.


뭉치네 가계도를 그려보았다. '쿵이+심이=하늘이'  쿵이와 심이를 섞으면 하늘이가 나올 것만 같다^^

처음엔 쿵이가 죽었나 싶었다. 하늘이가 엄마를 잃었구나 짐작했다. 그런데 쿵이는 살아있었다. 아마도 버림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하늘이가 집안에 들어온 직후 앞집에 가서 물어보니, 쿵이는 가끔 보이는데, 새끼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쿵이는 작고 말라 병약해 보인다. 건사하기가 힘에 벅차니 새끼들을 내친 모양이다. 길냥이들에게는 흔한 일이니까. 쿵이가 새끼를 낳은 것으로 추정되는 건 5월이다. 하늘이가 너무 작아 3개월도 안 되어 보이긴 하지만,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랐고, 쿵이가 워낙 작은 고양이임을 고려할 때 새끼가 맞는 듯싶다. 놀라운 건, 하늘이의 생김새가 뭉치의 다른 새끼 심이와 쿵이를 합쳐놓은 듯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작은방을 탈출한지는 이미 오래, 다리가 짧아 ㅋㅋ 못 오르던 식탁에도 오를 수 있게 되었어요.ㅎㅎ

하늘이가 아마도 어디 멀리서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끼 냥이는 겁이 많아 자신이 태어난 곳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우리 집 가까이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쿵이 말고 다른 냥이가 근처에 새끼를 낳았다면 내 눈에 띄지 않았을 리는 없다. 우리 집 근처 길냥이들은 모두 내가 꿰고 있고, 사료를 먹으러 대개는 우리 집에 들르게 되므로. 아마도 내 짐작대로 하늘이는 뭉치의 손자일 확률이 높다. 


내 배에 손을 척 올리고 숙면 중인 하늘 씨. 매일 저녁 나의 배를 침대 삼아 주무신다.

새끼 냥이는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간다. 하늘이는 아직 어린 데다 개냥이라서 내 손길을 늘 그리워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또한 싸복이남매로부터 하늘이를 지키고(?) 또 서로 친해지게 만들기 위해 꽤나 신경을 써야 한다. 뭉치가 떠난 슬픔이 너무 컸지만, 나는 일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 없었다. 울면서도 하던 대로 부지런히 싸복이 남매를 챙기고, 하늘이를 돌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하늘이는 어쩌면 뭉치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잘 돌보라는 의미로' 남기고 간 선물. 아닌 게 아니라 저녁때 집으로 돌아와, 배 위에 올라와 골골대며 잠자는 하늘이를 바라보면 슬픔은 어느덧 저기로 달아나고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이 따뜻함은 아마도 뭉치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병원에서 뭉치가 마지막으로 내게 하려던 말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엄마를 만나 행복했다고. 사랑한다고.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말라고. 엄마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늘이의 전용 침대로 전락한 느낌이지만 ㅎㅎ 뭐, 별로 나쁘진 않다.

하필이면 왜 그 시점에 하늘이가 내게 나타났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우연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잘 짜여 만들어낸 '인연'이 나를 조용히 위로해 주는 것만 같다. 뭉치가 오랜 시간 내 품에 안겨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늘 그게 너무도 서운했다. 그런데 하늘이는 매일 저녁 내 품에 안겨 쌔근쌔근 잠을 잔다. 나에게 이것은 큰 위로가 되곤 한다. 마치 뭉치가 '엄마 그동안 나 때문에 서운했지. 하늘이는 이제 계속해서 엄마 곁에 안겨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 그렇게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다.


싸복이 남매와 하늘이는 이젠 제법 거리가 가까워졌답니다^^

삶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삶이 가지는 부조리이자, 아이러니하지만 커다란 매력이다. 뭉치가 이렇게 빨리 내 곁을 떠나갈지, 내가 하늘이라는 새 식구를 맞이하게 될지 얼마 전까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뭉치의 죽음은 생각할수록 허망하고 안타깝지만 이것 또한 삶의 일부분임을,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순리임을 잘 안다. 다행히도 뭉치가 내게 주고 간 마지막 선물, 하늘이를 통해 나는 뭉치를 행복하게 추억할 수도 있을 것도 같다.  


하늘이는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났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뭉치가 보내준 선물 같다는' 나의 말에 친구가 말한다. "그래서 하늘이구나. 뭉치가 하늘에서 보내준 선물이라는 의미에서" 


하늘아~ 이제부터 너는 진짜 '하늘이'야.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어멍에게 진짜 선물이 되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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