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 깃털 Mar 19. 2018

무엇이 뭉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일까?

처음에 길냥이 뭉치를 집에 납치(?) 할 때 내 생각은 그랬다. 일정기간 동안 집 안의 생활에 적응한 뒤에도 스스로가 밖으로 나가길 원한다면 '쿨하게' 내보내 주어야지. 시작은 집냥이였다 하더라도, 길 생활에 오랜 시간 적응한 아이를 내 맘대로 집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추운 겨울을 집 밖에서 나본적이 없을 테니 겨울 동안만이라도 데리고 있자 하는 생각이었다. 지난겨울 동안은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다지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기색이 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심지어 지인이 우리 집에서 잠깐 뭉치와 싸복이 남매를 봐주었을 때, 뭉치가 가출했다가 반나절 추위에 떤 이후에 자발적으로 집안으로 들어온 일도 있었으니 말이다.


봄이 오긴 왔나 보다. 뭉치 마음에도 봄바람이 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날이 따뜻해지면서 뭉치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현관 중문을 열려고 여러 번 시도한 끝에 여는 방법을 터득했다.(나가고 싶은 거다) 문 사이 파인 홈에 손을 집어 넣으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오줌을 못 가려서 멍청한 줄 알았는데 제법 똑똑하다) 미닫이 문이기 때문에 고양이 힘으로도 충분히 열 수 있다. 일단은 응급처치로 테이프로 홈을 메꾸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문을 열려는 시도를 계속한다는 것. 미닫이문이 오래되어 급기야는 매우 신경 써 닫지 않으면 미세하게 틈이 생기고 종종 그 틈을 이용해 문을 열고 탈출을 시도한다. 싸복이 남매와 함께 마당에 드나들 때마다 호시탐탐 밖으로 나가기 위해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지켜보는 나의 마음에 분란이 인다


홈 사이를 테이프로 메꿔놓으니 이젠 문 틈 사이를 노리는 뭉치. 너 제법이다. 문도 열 줄 알고.

뭉치가 원하는 것은 '자유로웠던 길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내 욕심에 뭉치를 억지로 잡아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 뭉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일까? 뭉치를 자유롭게 놔줘야 하는 것일까? 고민이 계속해서 꼬리를 문다. 사실 우리 집은 마을의 가장 안쪽, 산 바로 밑이라 인적도 차량도 드물어 길냥이들에게 결코 위험한 환경은 아니다. 뭉치의 바깥에서의 행동반경 또한 뻔하다. 1년 가까이 앞집과 우리 집, 한 200미터 내외를 벗어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외국에서는 마당 있는 집에서 강아지들처럼 냥이를 자유롭게 키우는 집도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 고양이를 밖으로 내놓지 않는 이유는, 대개는 도시의 외부환경이 고양이에게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상했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때 퇴근하면서 내가 부르면 집으로 나를 따라오는 뭉치의 모습을. 그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일 듯했다. 뭉치가 원하는 대로 바깥에서도 지내고, 내가 바라는 대로 집 안에서도 편안하게 지내는 모습. 고민 끝에 집에 온종일 있던 지난 주말, 큰 맘먹고 문을 열어 놓아 보기로 했다. 뭐, 예상대로, 열자마자 그대로 바깥으로 직행이다. 처음에는 마당 주변을 어슬렁 거리더니 나중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예상한 대로 내가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한다.(물론 집 안에서도 그렇다) 들은 척 안 할 뿐 아니라 아예 대 놓고 도망간다. 한 번 간식으로 시험 삼아 꼬셔봤는데 간식의 유혹에 흔들리면서도 내가 잡으려는 낌새를 보이면 냉큼 도망간다.(배신감이 컸다) 나간 지 1시간쯤 지났을 때 불안한 마음에 냉큼 들어 집안으로 들어오려는데, 아뿔싸, 우렁차게 짖어대는 행복이를 보더니 줄행랑을 친다.


집안에서는 이렇게 나름 잘 지내면서, 왜애? 도대체 밖에 있는 뭉치한테는 그렇게 짖는 거니?

정말 희한한 것이, 싸복이 남매는 집 안에서는 뭉치와 너무나 잘 지내면서(친한 건 아니지만 결코 문제는 일으키지 않는다), 바깥에 나와있는 뭉치를 보면 미친 듯이 짖어댄다. 그러니까 바깥에 있는 뭉치는=그냥 지나가는 고양이인 것이다. 뭉치는 이 날 하루 종일 바깥에 있었는데 나는 뭉치가 우리 집 마당이나 근처에 왔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싸복이 남매가 미친 듯이(?) 짖어대서 뭉치의 위치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마당에서 오랜 시간 책을 읽었는데, 산등성이를 오르락내리락 열심히 타고 다니는 뭉치를 보기도 했다.(도대체 뭐 하는 걸까 ) 저녁 5시쯤 뭉치가 뒷마당에 있는 걸 발견했고, 해 지면 찾기도 힘들듯 해 데리고 들어왔다. 이때는 크게(그러니까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다. 아마도 놀만큼 놀아서 집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밖에서 도대체 뭘 하고 다녔는지, 끌고 들오자마자 떡실신.

어느 책에서는 고양이가 바깥에 맛을 들리면 자꾸만 나가려고 하는 습성이 생긴다고 했다.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앞으로도 계속 탈출을 시도하리라. 효리네 고양이처럼 알아서 들어오고 나가고 하면 좋으련만, 하루 종일 부러 문을 열어놓고 있었는데도 뭉치는 자발적으로 들어올 생각은 전혀 없다. 전문가에게 조언이라도 구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뭉치는 좀 특별한 경우여서 고양이를 많이 키워본 사람들도 답해주기 어려울 듯싶기 때문이다. 친한 동료는 주말에 틈틈이 밖에 나가게 해 주라고 조언한다. 집 안이 편안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나가버리지는 않을 거라면서. 주말에 집에 있을 때는 그래 볼까 생각 중인데, 잘하는 일인지는 확신을 못 하겠다.


뭉치의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걸어본다. '뭉치야~ 그렇게 밖에 나가고 싶어. 그냥 나랑 여기서 살면 안 될까' 하고. 뭉치의 속마음이 뭔지 알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어떤 것이 진정으로 뭉치를 위하는 길인지 알 길이 없어 안타깝다. 어쩌면 뭉치는 앞집과 우리 집에서 사랑받으면서 자유롭게 동네를 오갔던 삶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어느새 뭉치에게 정이 너무 많이 들어 내 곁을 떠나가는 것이 두렵다. 나를 떠나 바깥 생활을 선택할까 봐 두렵고, 바깥에서 지내다가 행여 험한 일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두렵다. 내가 뭉치를 많이 사랑하는 가 보다.


집사의 배가 쫌 푹신푹신하긴 하지. 평소엔 도도하기 짝이 없어도 가끔씩 이렇게 작은 몸을 기대 내 심장을 쿵하게 만든다.

사람들마다 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삶에 정답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그저 날마다 돌아보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정답일 뿐.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무엇이 뭉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뭉치가 좀 내 맘을 알아주면 좋으련만.


이전 07화 화성에서 온 강아지, 금성에서 온 고양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