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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Feb 14. 2018

화성에서 온 강아지, 금성에서 온 고양이

싸복이 남매와 함께 산지 6년 차가 되어간다. 


강아지 내게 몹시 익숙한 존재다. 반면 길냥이 밥이나 주었을 뿐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다. 고양이는, 즉 새로운 식구 뭉치는 나에게 너무나도 생소한 존재다. 흔히들 말한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상극이라고. 여기저기 주워들은 풍월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싸복이남매와 뭉치와 함께 지내다 보니, 고양이와 강아지가 얼마나 다른 영혼을 가진 존재인지 매일매일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뭉치 너~ 잘 때가, 아니 잘 때만 ㅋㅋ 예쁘다.

뭉치는 오리지널 고양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개냥이'가 아니란 이야기다. 개냥이를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다(뭉치를 본 지인들의 증언도 그렇다). 나는 길냥이 시절 뭉치가 개냥이 인 줄 알았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나만 보면 야옹거리며 너무나도 반가워하는 통에 깜빡 속았다(배신감이 컸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개냥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눈빛으로 꼬리로 아니 온몸으로 어멍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표현하는 싸복이 남매와 오래 살다 보니 처음에는 '본척만척' 도도하기 짝이 없는 뭉치가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내가 집에 들어가도 그저 '왔나 보다' 하는 표정으로 쓱 한 번 쳐다볼 뿐 어떤 반응도 없다(쳐다봐 주는 것도 황송하게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 먼저 손대는 걸 싫어하고 자기를 아는 척하는 것도 싫다. 언제 어느 때고 내가 원할 때는 마구 쪼물딱 거려도(?) 상관없는 행복이와는 천지차이다. 함부로 손댔다가는 물릴 판이다(몇 번 양손으로 내 손을 잡고 물려고 하기도 했다). 당연히 불러도 아무 리액션이 없다. 어멍이 부르는 시늉만 해도 벌써 달려와 있는 싸이와는 하늘땅 차이다. 


고백건대, 길냥이였던 아이를 집에 들이면서 3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목욕도 한 번 못 시켰다. 고양이는 목욕이 필요 없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길에서 살던 아인데 한 번은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목욕시키다가는 된통 물리거나 할퀴어 상처투성이가 될 것만 같아 아직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당연히 손톱도 아직 못 깎았다(역시 물릴까 봐). 덕분에 뭉치는 여기저기에 손톱이 걸려서 가끔 손톱을 빼지 못해 옴짝달싹 못하는 우스운 모양새가 되기도 한다. 


 아이씨 짱나, 거기 집사~ 손톱 좀 빼 주겠나~

긴 말 필요 없고 종합하자면, 뭉치는 어찌나 도도하고 고고한지 가끔 한대 쥐어박고 싶을 만큼 얄밉다. 거기에 오줌을 제대로 못 가리니, 나도 인간인지라 얄미움은 배가 된다. 나는 아무래도 고양이과가 아니라 강아지과가 틀림없다 싶었다. 고양이란 생명체는 원래 이런 건가 싶어, 솔직히 후회한 적도 많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싶기도 했고. 하지만 무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생각해보면 뭉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납치한 게 아닌가 말이다(뭉치님~ 우리 집에 들어오시겠어요?라고 물어본 적은 없다). 내 발등을 찍는 수밖에. 운명이자 팔자려니 싶었다. 감당해야 할 업보인 것이다. 


집사 꽃단장 쫌 하게 조금만 비켜주시면 안될까요.

위기에 처하면 책을 찾는 평소의 습관대로 고양이 서적을 탐독했다. 고양이의 습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쉽게 말해서 쟤는 원래가 저런 애라고 포기가 됐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 뭉치와 나의 관계, 뭉치와 싸복이 남매의 관계가 조금씩 안정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 강아지와는 180도 다른 고양이의 매력에 슬금슬금 빠져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다. 오호호호.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이 이래서 스스로 집사(?)가 되기를 자청하는 거구나 싶었다. 뭉치와 함께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왜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집사'라고 부르는지 비로소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책 읽는 집사 곁에 스리슬쩍 다가와 자리를 잡는다. 뭉치 너~ 나 좋아하는 거 맞구나.

'이놈의 오줌싸개 고양이 시키~' 같은 험한 말을 입에 달고 살긴 하지만, 뭉치가 얄밉기만 한 건 아니다. 도도하게 굴다가도 드물긴 해도 스스로 먼저 다가와 안기거나 꾹꾹이를 해 준다. 그것도 절묘하게 '아, 저 얄밉고 쌀쌀맞은 가스나'라는 생각에 빈정 상하는 포인트에. 이럴 땐 어김없이 그르릉 소리를 내며 내 손길을 즐긴다. 사람 홀리는 여시가 따로 없다. 소리를 잘 내는 강아지에 비해 하루에 몇 번 들을 수 있을까 말까 한 뭉치의 짧디 짧은 '냐아옹~' 소리는 또 어떠한가. 귀를 홀리는 참으로 교태로운 소리다. 


또 가만히 보면 안 따라다니는 척하며 은근슬쩍 나를 교묘하게 따라다닌다. 요리할 땐 싱크대에, 밥 먹을 땐 식탁에, 양치할 땐 세면대 옆에, 샤워할 땐 샤워부스 난간에 올라 가 있다. 처음엔 저게 나 따라다니는 건가 싶었는데, 평소에는 샤워부스 난간에 안 올라가는 걸 보면 따라다니는게 맞기 맞는 거 같다. 

뭉치 너~ 나 좋아하는 거 맞구나.


샤워하다 처음 봤을 땐 정말 엄청 놀랐다. 내가 샤워하는 걸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강아지는 사람에게 백프로 전적으로 의존한다.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처럼. 게다가 세상의 모든 아이가 그렇듯 아무 의심 없이 백프로 엄마를 사랑한다. 개들에게는 함께 사는 사람이 전부인 것이다. 반면, 고양이는 다르다. 달라도 아주 많이 다르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던 나는, 이제 서서히 고양이만의 관계 방식에 조금씩 적응해 간다.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상대방이 원할 때 손을 내미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알려주는 고양이 방식에 이제 비로소 적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마도 뭉치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사랑한다. 


한 장 건졌다. 드물지만 한 번씩 이렇게 셋이 모여있곤 한다.

나는 이렇게 집사가 되어간다. 나는 능숙한 개 어멍이자 고양이의 사랑에 목 마른(?) 초보 집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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