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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Jan 26. 2018

반전 매력의 소유자, 뭉치

길냥이 뭉치를 집에 들인 지 두 달 여가 되어간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제 뭉치는 완전하게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그동안은 혹여 잠깐의 틈새를 노려 집을 나가 다시 길냥이의 삶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늘 존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제는 (나가라고) 문을 열어놓아도 절대 나가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얼마 전에 지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3박 4일 동안 집을 비운 일이 있었다. 지인은, 낮잠을 한참 자고 일어난 후 뭉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사이 집을 나간 것이다.(나한테 죽었구나 싶어 순간 등골이 오싹했단다) 뒤뜰로 가서 '뭉치야~' 하고 부르니 대나무 숲에 숨어있다가 미친 듯이 달려 나왔다고 했다. 그 길로 순순히 집으로 따라 들어왔단다. 지가 탈출해봤자 뭐 별수 있겠는가. 족히 반나절은 추위에 떨었으니 따뜻한 집이 그리울 만도 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뭉치가 우리 집에 뿌리를 내렸다고 보아도 되지 않겠는가. 


늘씬한 몸매, 영롱한 눈망울, 고고한 자태, 이리보고 저리봐도 뭉치 너는 '미묘(美猫)'로구나

누가 뭐래도 뭉치는 미묘 중에 미묘다. 솔직히 고백건대 어쩌면 뭉치가 미묘가 아니었다면 나는 뭉치를 집에 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뭉치와의 만남이 특별한 '묘연'이려니 했던 생각은 아마도 아름다운 뭉치를 식구로 맞아들이고 싶은 나의 욕망이 투영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살아보니 역시 뭉치가 이쁘긴 이쁘다. 길냥이 시절엔 미처 알지 못했던 도도함과 새침함이 더해 그 아름다움은 더더욱 빛을 발한다.(길냥이 시절에 하도 나한테 살갑게 굴어 '개냥이'인 줄 알았더니ㅠㅠ 지내보니 도도하기 짝이 없는 오리지널 고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없이 우아 고상 할 것만 같은 뭉치는 외모와는 다른 반전 매력을 갖추고 있어 종종 나를 빵 터지게 한다. 뭉치가 나한테 사기를 친 건 아닌데, 뭔가 사기를 당한 기분이랄까.


미모에 눈멀어 어멍이 힘든 고생길을 자초했구나

뭉치는 물그릇에 있는 물은 절대 먹지 않는다. 주로 싱크대에 설거지 물, 싱크대 바닥에 고인 물, 세면대에 남아있는 물, 심지어는 변기 물을 먹는다. 처음엔 몹시 당황스러웠다. 물을 싫어한다는 고양이가 싱크대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변기 물을 드링킹 하는 것 까지. 뭐, 말리는 것도 한두 번이고, 강아지처럼 훈련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그냥 마시라고 내버려 둔다. 물론, 변기 물만 빼고. 안 그래도 집을 나설 때는 '저지레 대마왕' 행복이 때문에 단속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 나는, 뭉치와 함께 산 이후로 단속해야 할 것들이 배로 늘어난 기분이다. 그중에 한 가지는 당연히, '용변 후에 변기 뚜껑 꼭 닫기' 다. 변기 뚜껑 열어놓고 출근하는 건, 뭉치한테 변기 물 마시라고 떠주는 꼴이나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뭉치야~ 자고로 고양이는 물 닿는 걸 싫어해야 하는 거란다

누가 보면 어멍이 물을 안 주는 줄 알겠다

   길냥이 시절엔 어쩌면 깨끗한 물 얻어먹기도 힘들었을지 모른다. 앞집에선 따로 물은 떠주지 않아, 수상식물이 담겨있는 화분의 물을 먹는 모습을 본 적도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그냥 맹물은 맛이 없게 느껴지는 것일까 싶어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그래도 변기 물은 좀 마시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행복이가 철부지 어린 시절 가끔 변기 물을 드링킹 해 나를 식겁하게 하곤 했었는데, 이젠 행복이가 철이 드니 뭉치 네가 문제로구나. 어쩌면 우리 집에는 변기 물 좋아하는 요상한(?) 애들만 꼬인단 말이드냐. 

뭉치 너~ 보면 볼수록 우리 행복이와 닮았다~


가습기 대용으로 만들어 놓은 '세숫대야'에 코를 박고 물을 먹고 있는 뭉치 

하긴, 변기 물 먹는 것뿐이더냐. 여전히 오줌도 명확히 못 가린다. 요즘 노리는 것은 주로 싸복이 남매가 사랑하는 마약 방석. 방석이 두꺼워 빨아도 냄새가 빠지질 않아, 큰 맘먹고(?) 마약 방석은 싹 다 버리고 빨기 쉬운 것들로 교체했다. 덕분에 싸복이 남매는 그 좋아하던 마약 방석과 영원히 이별했다. 이젠 서서히 고약한 냥이 오줌 냄새에도 적응이 되어간다. 가끔은 내 팔자가 상팔자다 싶고, 또 한편으론 이러다 득도의 경지에 이르러 몸에서 사리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젠 제법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아니 아니 서로 개무시? 하고 있는) 싸복이 남매와 뭉치

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한 식구가 되었으니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된 것을. 뭉치야~ 다 좋으니 변기 물만 조심하자. 어멍이 변기통에 청크린 담가놨단다.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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