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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깃털 Dec 18. 2017

오줌싸개 고양이, 뭉치

길냥이 뭉치를 '집에 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 내 판단은 그랬다. '아니 뭐, 강아지처럼 산책을 시켜줘야 되는 것도 아니고, 행복이처럼 똥오줌을 못 가리지도 많이 먹지도 않을 텐데, 까지거 고양이 한 마리쯤이야' 그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풍월로 강아지보다는 고양이가 훨씬 손이 덜 가고 함께 살기 쉽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싸복이 남매와 함께하는 매 순간순간이 배신의(?) 연속이었듯이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꿈꾸던 '이상'과 '현실'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다는 인생의 참 교훈을 뭉치와 함께 하며 또다시 느낀다. 


어디 갔나 한참 찾았는데 요기 있고만 요 녀석, 나랑 숨바꼭질 하니까 재밌냐

그.러.니.까. 뭉치가 오줌을 못 가린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실성한 웃음이다.) 

처음 잠자라고 깔아준 이불에 오줌을 쌌을 땐 잠깐 실수했나 보다 했다. 고양이가 똥오줌을 못 가린단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자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고양이가 오줌을 못 가린단 이야기가 제법 떠돈다. 그러니까 아주 없는 일은 아닌 듯했다. 처음에 행복이가 해코지할까 싶어 작은 방에 가둬놓았을 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불이나 방석 빨래하는 것쯤은 '저지레 사고 대마왕 30킬로 대형 강아지=행복이'와 함께 사는 내게 '껌 씹는' 일만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멍~ 얘는 누구야? 누군데 내 쿠숑위에 올라갔어? 야~ 같이 지낸 지 한 달이나 지났잖아,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잖았어?

하지만 뭉치가 거실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거실에는 침대가 있고(싸복이 남매와 함께 뒹굴고 싶어 놓은 침대다.) 그 침대는 사각 난방 텐트로 둘러싸여 있다.(나 없을 때 행복이가 침대에 하도 오줌을 싸서ㅠㅠ 궁여지책으로 친 것이다) 거실 침대에 오줌을 싸기 시작한다. 행복이 때문에 다행히 침대에는 방수시트가 씌워져 있긴 하지만 매 번 빨고 다시 씌우고 하는 과정이 결코 쉬운 건 아니다. 거기까지도 괜찮았는데, 사각 난방 텐트 위에 올라가서 오줌을 싼다. 텐트 천이 완전 방수는 아니어서 또 그 오줌이 바닥까지 새는 거다. 


너........ 거기 쪼만한 잿빛의 생명체.....  넌 누구냐?  나 뭉치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이 초대형 인절미야~

안방만은 지키고 싶었기에 매번 외출할 때마다 신경 써서 안방 문을 꼭 잠겄는데, 어느 날인가 싸복이 남매와 산책 나가면서 문 닫는 걸 깜빡했다. 산책 내내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이 안방 침대에 오줌 테러를 가했다. 다행히 한 겨울인지라 바닥에 이불을 많이 깔아놓아 시트까지 젖는 건 막을 수 있었지만 겨울이불 세 채를 빨고 말리느라 아주 등허리 휘는 줄 알았다. 취침 시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초대형 쿠션은 그 길로 운명했다. 어떻게 빨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기본이 실외 배변이긴 해도 우리 행복이도 배변을 못 가리긴 매한가지. 그래도 우리 행복이는 나름의 예의와 원칙을 가지고 있다. 첫째,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절대 거실 침대에 싸지 않는다.(어멍 없을 때만 싼다) 둘째, 함께 잠자는 안방의 침대에는 싸지 않는다.(어멍의 침대는 소중하니깐) 셋째, 가구 안으로 들어가게 싸지 않는다.(어멍이 쉽게 치울 수 있도록) 배변이 완벽한 강아지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지만 여하튼 나름의 예의와 원칙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뭉치는 이건 뭐, 원칙도 예의도 없다. 게다가 고양이 오줌은 냄새가 지독하기로 유명하다. 빨아도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뭉치 없다~ 

정신줄을 빠르게 수습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훈련이 되지 않는다. 배변훈련이 될 턱이 없다. 일단, 유심히 지켜봤다. 똥은 꼭 모래 화장실에 싸고 오줌도 가끔은 모래 화장실에 싸기도 하니 아주 못 가리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본인이 자던 이불에 제일 많이 싸는 걸로 보아서 영역표시를 하는 듯했다. 길냥이 시절 내가 보일러실에 쳐놓은 이불에 오줌 싸는 걸 본 적도 있다. 이제 이 곳이 내 집이고 내 영역임을 표시하기 위한 거라고, 뭉치도 여기가 제 집이라고 생각하는 거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가르칠 수 없다면 막는 게 상책이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방어할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너희들, 어째 좀 많이 가까워진 듯 ㅎㅎ 그게 아니고 행복이가 졸릴 때나 잘 땐 뭉치를 모른 척(?) 한다~ 잠이 더 중하거든요.

일단 거실의 사각 난방 텐트를 치웠다. 언제 어느 때 위로 올라가 오줌을 쌀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난방 텐트는 문을 완벽히 닫을 수 있고, 올라가서 자세잡기 어려운 돔 형으로 바뀌었다.(불편한 자세로는 오줌을 싸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대개는 닫아둔다. 밤에 거실 침대에서 자는 걸 좋아하던 싸이도 이제 여기서 잘 수 없다. 싸이를 붙잡고 말했다.(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슬프겠지만 우리 조금씩만 양보하자~ 뭉치도 이제 우리 식구잖니' 하고. 안방 문은 단속을 잘한다. 뭉치가 쉬라고 몇 군데 둔 이불은 제일 좋아하는 자리(희한하게 거기에는 안 싼다) 하나만 빼고 싹 다 치웠다. 거실에 1인용 바닥 의자가 있었는데 거기 다도 실례를 하길래, 그것도 미련 없이 버렸다. 새롭게 정비를 마친 지 이제 이틀째, 그럭저럭 나의 전략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이틀 동안은 괜찮았다.


어멍이 요가 쫌 해보겠다는데 이것들이 쌍으로 방해공작을.

집에 들어오면 첫째, 모래 화장실부터 확인한다. 뭉치가 쉬를 했는지, 안 했는지. 그간 집에 있을 때 뭉치가 또 어디다 오줌 싸나 싶어 늘 불안했다. 뭉치가 어디 있는지 늘 주시해야 했고(고양이 특성상 강아지와 달라서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신경 써야 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침대에 오줌 싸는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했을 때에는 놀랠 줄 알면서도 고래고래 소리지르기도 했다.(나중에 반성했다 ㅠㅠ 알아듣지도 못하는 애한테) 미울 때도 있었고,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나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천사같이 자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눈 녹듯 풀린다. 특히 어쩌다 한 번씩 그 작은 손으로 내 어깨에 매달릴 때는 아주아주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그래, 오줌 좀 못 가리면 어떠냐. 이렇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쁜데.


뭉치 너~ 자는 모습 안 예뻤으면 너는 벌써 쫓겨났어.

그러고 보면 내가 똥오줌 못 가리는 애들 전문이다. 내 팔자가 그런가 보다. 그 똑똑하기로 유명하다는 골든 리트리버중에 똥오줌 못 가리는 특이한 애가 우리 집에 살고, 배변훈련이 필요 없다는 고양이 중에서 유독 오줌 못 가리는 애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이쯤 되면 신의 섭리다. 받아들이련다. 


뭉치야~ 행복아~ 똥오줌 못 가려도 좋으니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하렴~

(아니 아니 어멍 진짜 속마음은 좀 가렸으면 좋겠구나. 행복이 특히 너, 이젠 좀 가릴 때도 되지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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