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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Nov 07. 2023

가을, 사람 셋

그립고 고맙고 이쁘고...




파 한 단을 샀다.

식품관 채소 코너에서 파를 뒤적이니까 다 똑같은데 뭘 고르느냐는 남편의 한마디. 물론 맞는 말씀, 결국 언제나처럼 맨 위에 있는 거 별생각 없이 그냥 한 단 집어 들었다.


사실 이번엔 파뿌리가 온전한지를 살핀 것이었다. 문득 파를 심고 싶은데 이걸 심으면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뿌리는 붙어있지만 모양새를 보니 뿌리를 내리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더구나 겉의 껍질 부분은 지저분해 보일까 봐 말끔히 다듬어져 있기까지 하니 심을 수 있는 파는 아닌 듯하다. 그냥 냉장고 채소칸용으로 한단 사는 걸로~  

오래전 이맘때쯤 오빠네 갔다가 텃밭에서 쑥쑥 뽑아준 파를 한 아름 정도 얻어왔었다. 물론 우리 집 파 소비에는 당치도 않은 엄청난 양이어서 요걸 어쩔까... 하다가 넓은 화분에 심어 보기로 했다. 


화초 기르기도 여간한 생명력이 좋은 것이 아니면 도무지 살려내지 못하는 *손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파는 화분에서 너무나 멋지게 잘 살아낸다. 겨울이 되니 노오랗게 올라오는 움파가 너무 이뻐서 마냥 두고 화초처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을이 깊어지고 지나다가 파를 보면 언제나 그해 가을과 긴 겨울의 파 화분이 생각난다. 통통하고 빳빳하게 기립해서 보여주던 생명력이 오지게 힘찼다. 겨울이 끝나고 창문 가득 봄볕이 쏟아져 들어올 무렵이면 파꽃을 매달고 소리 없이 일생을 지켜내던 모습을 기억한다. 먼 길 떠나신 울오빠가 생각난다. 거기서 안녕하시지요...  




한동안 알고 지내던 분이었다. 기사 원고 때문에 메일과 문자, 통화로, 간간히 만나서 밥도 차도 마시던... 업무 조정으로 이젠 다른 사람으로 담당이 바뀌었지만 따뜻한 인연이었다. 

거리낌 없는 도란도란 대화와 소소한 정보를 나누던, 내게도 꽤 기분 좋은 우리 아들 또래인, 긴 머리의 담백하고 이쁜 친구였다. 

'나이를 초월한 너무나 잘 맞는 사회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좋았었다는 메일을 그녀가 보내왔다. 



아들만 키우는 사람들이 무딸클럽이란 이름의 모임이 있다더니, 아들만 있는, 아니 남자만 있는 우리 집에 어여쁜 아이가 가족이 되었다. 

전시회 때 사온 꽃부터 다르다. 생일이면 케잌 디자인이 달라진다. 그동안 아들은 제과명장의 케잌이니 하는 이름난 케잌이면 최곤줄 알고 사들고 들어오곤 했었는데 이젠 정성이 느껴지고 이뿌다. 밥 먹는 모임 때도 우리 가족사진 찍자고 팔을 쭉 뻗어서 인증샷을 담는다. 요모조모 때때로 달라지는 걸 본다. 새로움에 설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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