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2021년 2월 호
글 데이비드 콰멘 l 사진 크레이그 커틀러
코로나19는 바이러스의 파괴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없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은 존재할 수 없다.
바이러스가 없는 지구를 상상해 보자.
마법 지팡이를 휘두르자 모든 바이러스가 사라진다. 광견병바이러스가 별안간 자취를 감췄다. 폴리오바이러스가 사라졌다. 또 끔찍하게 치명적인 에볼라바이러스가 없어졌다. 홍역바이러스와 멈프스바이러스 그리고 각종 인플루엔자바이러스가 사라졌다. 인간의 고통과 죽음이 크게 감소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사라져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대유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두나 간염, 대상포진은 물론 감기까지 사라졌다. 2003년에 나타난 사스바이러스도 사라졌다. 이제 우리는 사스바이러스가 현대의 세계적 유행병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경보였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코로나19를 일으키며 당혹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결과를 낳고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울 뿐 아니라 몹시 위험하고 전염력이 아주 강하고 잔인한 사스-코브-2바이러스도 사라졌다. 자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는가?
하지만 아직 좋아할 단계는 아니다.
이 시나리오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사실 우리는 바이러스의 세계에 살고 있다. 바이러스는 헤아릴 수 없이 종류가 다양하고 셀 수 없을 만큼 풍부하다. 해양에서만 관측이 가능한 우주에 있는 별보다 더 많은 바이러스 입자가 있을 수도 있다. 포유동물에는 대략 32만 종의 바이러스가 서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엄청난 수만큼 바이러스의 영향력도 상당하다. 바이러스 대부분이 인간을 비롯한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의 진화 과정에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바이러스가 없다면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의 유전체에는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두 가닥의 DNA가 존재한다. 이 DNA가 없으면 임신이 불가능할 것이다. 바이러스에서 비롯된 DNA가 육상 동물의 유전자들 사이에 미세한 단백질 거품의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다.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또 다른 유전자들은 배아의 발달에 도움을 주고 면역체계를 관장하며 암을 억제한다. 이 중요한 효과들은 이제 겨우 알려지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는 진화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가 앞에서 사고실험을 해본 것처럼 세상에서 모든 바이러스를 없애면 우리의 행성을 지탱해주는 방대한 생물다양성이 붕괴할 것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거진 2021년 2월 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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