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공산주의 vs 자본주의

by 꺽정

주변 사람들에게 공산주의에 대한 견해를 물으면 답변이 대부분 부정적이다. 답변내용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막연한 감정에 치우친 경우가 많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 그 이유일 것이다.


원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심해지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사상이다. 자본주의가 무난하게 작동했다면 공산주의 사상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가들은 자본과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생산을 늘리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지만, 하류계층인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착취 수준의 열악한 환경에서 노예처럼 일을 해야만 하루하루를 연명할 수 있었다. 사실 산업혁명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산업혁명 이후 더 심해진 것이다. 당연히 기존 기득권 자본가들에 대한 반감은 커져갈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사회적인 심각한 문제를 직시한 칼막스에 의해 주창된 공산주의는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매력적인 사상으로 다가왔다.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토지 등 생산자본을 소유한 자본가 계급을 무너뜨리고 그들이 소유한 자본을 집단(Community)이 공유해야 한다. 때문에 자본가입장에서 공산주의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상이었고 자본가로 대변되는 기득권의 공산주의에 대한 탄압은 무자비했다. 하지만 빈곤과 갈수록 커지는 불평등으로 인하여 다수의 빈민들은 봉기하였고 러시아를 시작으로 공산주의국가가 수립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왕 귀족 자본가 등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려야 하기에 내전 수준의 폭력은 불가피했다. 기득권 세력이 대대손손 상속받아 누리고 있는 권력을 순순히 내어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계급 간에 피로 얼룩진 폭력은 피할 수 없었다. 자본가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였고, 공산주의자들은 자본가들로부터 기득권을 나누기 위해서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을 것이다. 결국 그들도 폭력을 사용했다. 이 대목에서 공산주의자는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폭력을 사용하는 의도나 목적도 이들 간에는 확연하게 다르지만 폭력의 수준도 서로 간에 차원이 다르다. 신대륙의 인디언들을 말살했던 것도, 마야문명을 말살했던 것도 아프리카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 치운 것도 다 자본가들이 저지른 폭력이다.


공산주의 사상은 이 세상사람들이 최대한 공평하게 대우받고 빈부의 격차가 크지 않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들은 생각은 매우 훌륭하지만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간의 본성은 자본주의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 인간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던 그 아득한 옛날부터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회가 자본주의 성격의 사회였다. 이를 깨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공산주의 체제로 바꾸었다 하더라도 이를 지속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본능인 욕심을 통제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은 강압적인 힘이 있어야만 통제될 수 있는 근원적인 본능이다. 이것은 인간이 통제한다고 해서 통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설사 통제가 되더라도 그 순간 통제하는 세력이 기득권이 되고 통제당하는 쪽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민층에 해당되는 계층으로 전락한다. 체제만 달라질 뿐 자본주의 사회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실현가능여부를 떠나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상적인 목표인 것은 분명하다. 이 사회에서는 빈부의 격차도 크지 않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대부분은 빈부의 갈등에서 시작된다. 기회의 불평등에서 시작된다. 모든 이들이 능력에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고, 공평하게 대우받고, 빈부의 격차가 크지 않다면 그 사회가 천국이다. 공산주의는 이러한 천국을 현실세계에 이루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을 현실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비에트 연방, 중공 등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했던 나라들이 지금은 사실상 자본주의 국가로 변해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산주의는 그럴 듯 하지만 이를 현실에 적용시키려면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능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능을 자유롭게 하고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능을 통제하려고 한다. 자본주의가 살아남고 공산주의가 죽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서유럽에 있는 많은 나라들은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사회주의적 요소를 매우 많이 반영하고 있다. 세율이 높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자본주의 사회이니 부의 추구는 자유이지만, 소득에 비례하여 높은 소득세율을 부과한다. 가진 자에게서 세금을 많이 거두어 저소득자에게 분배하겠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처럼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생산하고 분배하는 방식으로 생산물을 나누지 않고 세금을 통해 사후적으로 생산물을 나누는 방식인데 그 결과는 비슷하다. 자본주의체제는 유지하면서 그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체제에서 고소득자들은 불만이 많을 것이다. 일부 고소득자는 이민도 불사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기가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의 존재 의미를 무시하는 사람들이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한다면 공산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성공적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경제적으로 균등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컨센서스가 경제적으로 불균등한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컨센서스보다 더 이성적이고 보편타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적인 체제이다. 설사 존재하더라도 그 사회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할 수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는 통제되어야만 성립 가능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통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특정세력에 의한 독재가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사회가 민주주의를 위한 토양이 우수하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빈부격차가 적고 사람들 간의 편차가 적은 사회가 민주주의의 토양이 잘 갖추어진 사회이지 사회체제의 문제가 아니다.


공산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국가에 비하여 경제성장률이나 과학기술발전 속도가 느리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정에서 빠른 발전이 만들어지지만 공산주의 국가는 발전에 대한 동기부여가 작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자본주의 국가의 생활 수준이 공산주의 국가보다 우수한 것은 일견 사실로 보인다. 생활수준이 높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오염, 기후위기 등이 인간의 욕심이 통제되지 않아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공산주의 체제가 장기적으로 더 우수할 것이다. 지금 맘껏 자유를 만끽하면서 소비하고 쓰레기를 산더미처럼 만드는 것이 중요한지, 검소하게 살아가면서 지속가능한 지구생태계를 보전하는 것이 중요한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대하여 유달리 경기를 내는 이유는 이렇다.


조선이 나라를 빼앗기고 나서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들이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꿈꾸었던 새로운 독립국가는 사회주의국가에 가까웠다. 김일성만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의 대부분은 사회주의 사상가였다. 그들이 사회주의를 추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이에 반하여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등에 업고 조선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세력은 대지주이자 자본가들이었다.


해방이 되면서 북에는 김일성의 군대가 진주를 하고 남에는 미군이 진주하였다. 북에서 김일성은 친일파이자 자본가인 대지주들을 숙청하여 그들의 땅과 재산을 국유화하였다. 용케 죽음을 피한 이들은 남한으로 피난을 하였다. 교회의 목사들도 비슷한 처지였다. 그때 남한으로 피난 온 유산 계급인 지주, 목사들은 북에서 전 재산을 빼앗겼으니 얼마나 원통했을지는 상상가능하다. 우리나라 교회가 공산주의에 대하여 유달리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그 당시 북한을 탈출한 이들은 남한에서 다시 교회를 세우고 교세를 확대하였는데 이들이 북한에 대한 반감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북한에서 친일 매국세력은 어김없이 청산대상이었던 반면 남한은 그렇지 않았다. 남한은 미군정이 통치하면서 오히려 친일파가 득세를 하였다. 미군정은 다 죽어가던 친일파를 재등용하였고 그 결과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가 오히려 죽음을 당했다. 우리에게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미국이었지만 친일파들에게 미국은 구세주였다. 그리고 6.25 사변이 일어났다. 김일성은 친일파 청산을 명분으로 남침을 감행했지만 이는 민족사적 입장에서 최대의 실수였다. 6.25 사변으로 인하여 친일파는 남한에서 기득권세력으로 완전하게 뿌리내리게 된다.


이들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최고의 악으로 내세웠고, 6.25를 경험한 남한인 들은 친일파보다도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더 미워하게 되었다. 덕분에 매국노 친일파들은 안도의 숨을 내실 수가 있었다. 그들이 일제의 앞잡이로서 자행했던 민족에 대한 범죄행위로 인해, 자신들에게 겨누어질 칼날이 북한 공산주의자에게로 돌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친일파를 제거하고자 남침을 했던 김일성은 오히려 친일파의 입지를 굳건하게 한 구세주가 되어버렸다. 일례로 백선엽은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을 토벌한 대표적인 반민족 행위자인데 6.25에서 전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교통부장관, 각국 대사에 임명되는 등 남한에서 천수를 누리다가 국립묘지에 안장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친일파 세력은 남한의 기득권을 차지하면서 언론 교육 등을 통하여 남한인을 지속적으로 교육(세뇌)시킬 수 있었고 북한과 공산주의자들을 명실공히 민족의 최고의 적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심을 수가 있었다. 그 결과 남한인 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북한, 공산주의라는 말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키게 된다.


공산주의의 발생원인은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심할 때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생겨난 사상이다.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운명이 공산주의라는 것이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공산주의가 생겨난 배경 그리고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목표의 취지를 살펴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 보완하는 관계인 것이다. 서유럽의 일부 국가는 이러한 것을 잘 이해하여 사회에 잘 반영하고 있지만 이에 반하여 일부국가들 특히 우리나라는 이성적 사고 없이 감정적인 대응으로 보다 좋을 사회를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친일파 매국노들이 자기들이 살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악질적인 프레임에 더 이상 갇혀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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