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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 Jan 13. 2019

책을 쓰는 저자들의 시대

우리는 기억되고, 기억하기 위해 쓴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며 소비능력을 갖추게 됐을 때, 나는 한동안 닥치는대로 잡스러운 것들을 사 모았다. 늦은 밤 퇴근하고 돌아오면 쇼파에 누워 이것저것 쇼핑을 했다. 뭉친 다리를 풀어줄 것 같은 족욕기부터 매일 그림을 그릴 것만 같은 120색 색연필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시발 비용'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 훨씬 나중의 일이라 내 소비가 그런 종류였음을 알게 된 건 한참 후였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여행에 탐닉했다. 

이른바 소유보다 체험에 가치를 두는 단계로 넘어가서 같은 돈이면 쇼핑보다 경험에 쓰게 된 거다. 여행은 매순간이 경험의 연속인 '종합선물세트' 가 아니던가. 자연스럽게 집착적인 여행욕에 불타올랐고, 폭발적인 체험의 현장에서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여행이 반복된 후, 그 체험이란 것도 알 수 없는 공허감을 해갈해주진 못했다. 한바탕 길 위의 축제가 끝나고 나면 역시 모래알처럼 손에서 스르륵 빠져나가는 느낌. 


그 때부터 나에게 새롭게 생겨난 욕망이 있었으니 바로 내 것을 쓰고, 내 것을 쌓아나가고 싶은 욕구였다.



왜 나는 내 것을 쓰고 싶은 욕망에 다다랐나



골똘히 생각해보니 문득, 미국 서부 라스베가스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텅 빈 갤러리에서 혼자 이글이글 타오르는 붉은 브론즈 조각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다. 갤러리의 콜렉터가 다가와 말을 건 것이다. '멋지죠, 브론즈? 한번 이 소리도 들어봐요. 아름답죠?' 그는 눈 앞의 조각을 무심히 손으로 통통 두들겼는데, 붉은 청동조각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청명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혹시, 이런 작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뭔지 알아요?' 불쑥 질문을 던진 콜렉터. 

글쎄요, 나는 수집할 능력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름다워서? 설마 재산가치인 건 아니죠?



기억되고 싶어서요



"기억되고 싶어서요.

기억되고 싶어서 그들은 이것들을 수집하는 겁니다.

내가 누구였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의 가족들과 후세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거예요."


엥? 그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답이다.

이런 작품을 사 모을 정도로 돈이 무지막지하게 많은 사람들이 '기억되고 싶어서' 라는 아련터지는 이유로 작품을 수집하리라곤 생각하지 못 했다. 그저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정도라고 예상했을 뿐.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뉴욕 이스트빌리지 대저택의 부호들이 같은 이유로 자신만의 아트 컬렉션을 모아 자기 이름으로 된 미술관을 남기다는 소리다. 모두가 천재적인 능력으로 피카소, 마티즈처럼 불멸의 명작을 남길 수는 없으니 그들의 작품을 수집해서라도 나란 인간이 이런 취향과 감성을 지녔던 사람이라고,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란 것.


갑자기 어마무시한 갑부들에게서 동병상련의 짠함이 느껴졌다. 너나 나나 결국은 죽어 사라지고 말 유한한 존재로서의 동질감같은 것. 하루하루 밥벌이하며 살아가는 나조차도 이렇게 살아가는 게 공허한데, 세상 아쉬울 게 없는 그들은 얼마나 더 하겠는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서라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고 싶은 열망이겠지.




그리고 비로소 나는 내가 정말 바라던 것이 뭐였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사라지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 역시 그들처럼, 언젠가는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거라는 불안감이 매일 밤 공허하게 엄습했던 거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세상으로부터 기억되고 싶어서 어느날 불현듯 나만의 뭔가를 쓰고, 나만의 아카이브를 쌓아야겠단 생각에 다다른 거다. 그리고 아마도 요즘들어 부쩍 키보드 앞에 앉게 된 당신이라면, 역시 같은 운명 때문이 아닐까. 


'씀'으로써, 오늘의 나를 글로 남겨 아무것도 아닌 무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 그 간절함이 나와 우리를 이렇게 모두가 쓰는 시대로 이끌었으리라.


나를 기억해줘!


그래서 나는 권하고 싶다.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의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원인을 알길 없는 공허함이 짙어만 가는 당신이라면 지금이라도 바로 컴퓨터를 켜고 어떤 플랫폼이라도 좋으니 나만의 포스팅을 써내려가 보라고. 나 라는 사람의 아카이브를 세상에 남겨,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보라고.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래서 사라지지 않기 위하여, 오늘 우리 모두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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