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렌치 쿼터
이 사람들, 진짜다
이 도시, 진짜다
진짜 스웩은 겉이 아닌, 내면에 있더라
어떤 도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 도시가 사라지는 날에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감과 감성을 지닌 대체 불가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가 그 중 하나다.
뉴올리언스의 프렌치 쿼터에서는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악! 소리를 내며 거리를 누비게 된다. 소울, 심장, 열정, 희열, 쾌감 같은 뜨거움이 도시에 산소처럼 스며 있다.
하나하나 누추하고 구식인데 그 어느 곳보다 신선하고 새롭다. 세상에 아직 이런 도시가 남아 있다니
루이 암스트롱의 도시 뉴욜리언스는 매년 5월 초 세계적인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다.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하루 종일 멈추지 않는 음악을 즐긴다.
공연장은 물론이고, 식당, 바, 아무도 듣지 않는 길 모퉁이, 누런 미시시피 강변에서도 음악은 계속된다. 누가 듣든 말든 상관없다. 나를 위해, 이 순간을 위해 세상 신나게 노래하고 연주한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공연장들은 낡아빠져서 쓰러질 것 같은 구멍가게처럼 생겼다. 몇 십 명이 다닥다닥 몸을 한껏 웅크리고 앉아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비좁은 거실 크기다. 연주자의 무릎과 관객의 무릎이 닿는 거리에서 침과 땀이 튈 정도로 밀착한 채 재즈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 연주자들로 말할 것 같으면, 영화 <국제시장>에 등장할 것 같은 헐렁한 양복을 걸친 백발의 할아버지들이 상당수.
놀라운 것은 그 공연들을 보면서 줄곧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건 바로 세상이 말하는 ‘스웩’이었다. 이럴 수가, 둠칫둠칫 노래하는 할아버지에게서 스웩을 느낄 줄이야. 그 동안 가지고 있던 그 단어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상황이다.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서 듣기 힘들 정도로 혼자 읊조릴 뿐 인대도 압도적인 스웩이 뿜어져 나온다. 그 음악의 길 하나 외에는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하고 가벼워 보여서 압도되는 여유와 자신감 같은 것.
특히 중간중간 각 연주자가 릴레이 하듯 솔로 연주를 하는 순간에는, 과장이 아니라 한 사람이 걸어온 인생이 겹쳐져 보이는 걸 느낀다.
저 사람 저거 안 하면 죽겠구나, 이게 인생의 전부구나, 저 사람 진짜구나.
눈을 감고 악기를 껴안고 둠칫둠칫 흠뻑 도취된 채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에 있는 걸 느낀다. 굉장히 황홀한 시공간으로 홀로 떠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감탄을 너머 질투가 느껴졌다.
그가 취한 것이 리듬이든, 필이든, 자신의 영혼이든, 무언가에 그토록 취해있는 상태가 사람을 홀리게 만들었다.
자아도취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긴 하지만, 자아에 도취 된 순간이란 얼마나 달콤하단 말인가.
자아를 죽이고 살아 그 상처로 아프기까지 한 요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자아에 흠뻑 도취된 마이 웨이는 약이될지도 모르겠다. 만족스러운 삶을 만드는 극약 처방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인생에서 한번쯤 뉴올리언스의 저 스웩을 뽐내봐야 하지 않겠냔 말이다.
[뉴올리언스]
루이지애나 주의 최대 도시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해서 큰 피해를 입었던 지역이다. 재즈의 발상지로 불리며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프렌지 쿼터가 주요 관광 명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