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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 Oct 03. 2016

미키 마우스는 올해 몇 살일까?

@ 월트 디즈니의 본고장에서


"렛잇고~♪ 렛잇고~♬"

무대 위로 뛰어나간 꼬마 아이들이 목청껏 렛잇고를 따라 부른다. 덩달아 수염 덥수룩한 덩치 큰 아저씨들도 진심을 가득 담아 밤하늘에 메아리가 울려퍼지도록 하나되어 열창한다.


환상의 야외 공연장으로 불리는 LA 할리우드볼에서 뮤지컬 가수 이디나 멘젤이 디즈니의 메가 히트곡인 겨울왕국의 <렛잇고>를 부르는 순간이다.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다 보면 어디를 가든 예상치 못한 월트 디즈니의 강렬한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전세계 애니메이션의 대명사인 월트 디즈니가 탄생한 본고장이자, 그 본사가 이 곳 버뱅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거리에는 <디즈니 전용 극장>이 있어서 매일매일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 이 곳의 명물인 <워크 오브 페임>에선 핑크빛 별 속에 월트 디즈니와 미키 마우스의 이름을 함께 찾아 볼 수 있다. LA 다운타운에서는 두다멜이 지휘하는 멋드러진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을 볼 수 있고, 샌프란시스코 <월트 디즈니 가족 박물관>에선 그의 파란만장했던 스토리를 엿볼 수 있다. 디즈니 캐릭터와 함께하는 크루즈 <디즈니 원더>는 이 곳 어린이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올 해로 60주년을 맞이한 오리지널 디즈니랜드에서 팬들의 사랑이 절정에 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실 지금은 디즈니가 클래식 중의 클래식으로 여겨지지만, 100년 전 애니메이션이 갓 태동할 때의 월트 디즈니는 새로운 산업의 문을 열어나간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최초의 유성 만화영화, 최초의 3원색 테크닉 만화..등 새로움의 타이틀은 전부 디즈니가 가지고 있다. 혁신의 땅 캘리포니아에 디즈니가 본사를 두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 생전, 애플 주식보다도 아꼈던 것이 디즈니 주식이었단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디즈니 최대 개인 주주는 그 유산을 물려받은 그의 아내 파월 잡스다.


캘리포니아에는 쟁쟁한 세계적인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경쟁을 하고 있지만 직접 보고 경험해보니, 그 중 가장 위대한 기업은 단연 <월트 디즈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전 세대를 아우르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디즈니랜드의 오래된 놀이기구 앞에서 줄을 선 백발의 할아버지가 "여긴 나 젊었을 때랑 변한 게 없네~" 하면서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루카스필름 본사에서 한 40대 여성은 꺅- 소리를 지르며 아들을 불렀다. "이리 와봐!! 여기 R2D2가 있어!! R2D2야~!" 아이보다 훨씬 신나 보이는 엄마였다.



미키마우스가 탄생한지 어느덧 90년이 다 돼 간다. 그 친근한 얼굴 때문에 미처 생각 못한 까마득한 시간이다. 1923년에 처음 생긴 월트디즈니 컴퍼니가 올해로 93년이 됐으니 현재를 살아가는 미국의 엄마 아빠들,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렛잇고를 열창하는 꼬마 아기들까지 디즈니와 함께 자라온 것이다. 세대 별로 다른 경험과 다른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겠지만 디즈니 캐릭터와 노래 앞에선 그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는 공통의 기억을 가진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의 힘이다. 요즘처럼 열렬한 관심 속에 급부상했던 회사들이 채 몇 년이 가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는 시대엔 그 위대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디즈니 캐릭터에 심드렁했던 나로서는 디즈니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어른들을 보며 좀 유난이란 생각도 들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역시 이 곳 사람들은 감정 표현이 큰 편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다 난생 처음 찾은 디즈니랜드에서 그들이 자랑하는 퍼레이드와 마주치곤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다. 알라딘, 라이온킹, 인어공주, 겨울왕국... 디즈니의 주옥같은 OST들과 함께 한 세기동안 사랑 받아온 전설의 캐릭터들이 손을 흔들며 눈 앞을 지나가는데 절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알 수 없는 감격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감격이란 아마도 <추억>일 것이다. 아주 오래 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던 꼬꼬마 시절에 내 안에 들어와 지금껏 소리없이 잊혀져 있던 추억들이 신기하게도 눈 앞에서 그들을 보고 듣는 순간, 스르륵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내가 기억하는 줄도 몰랐던 노래 가사를 함께 부르는 걸 보며 놀라웠다. 자기 안에 뭐가 잠들어 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게 사람이었나 보다.



해가 지고 난 후 펼쳐지는 분수쇼와 불꽃쇼는 단연 디즈니랜드의 하이라이트다. 100년 역사에 달하는 디즈니의 레전드 캐릭터들이 가슴 촉촉한 음악과 함께 끝도 없이 스쳐 지나간다. 에리얼, 세바스찬, 피터팬, 알라딘, 벨, 니모, 덤보... 이렇게 많은 캐릭터들이 있었던가 하고 넋을 놓고 보았다.


<언더 더 씨>를 따라 부르던 풋풋했던 시절부터 유튜브로 <렛잇고> 패러디 영상을 보던 비교적 최근의 기억까지 그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 온 나의 지난 날들이 타임라인 위에서 흘러갔다. 디즈니와 그리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나의 인생에도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음을 알게 됐다.



그게 바로 디즈니가 이 캘리포니아에서도 가장 강력한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가장 감수성 풍부한 유년기 지구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 사라지지 않는 커다란 잔향을 남기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 속 파장과 영향력은 그 시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는 뿌리다.


식상한 말이지만 그게 바로 콘텐츠의 위력일 것이다. 인생의 한 시절,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야기의 힘이고 마음을 내 준 캐릭터의 힘이다. 그 영향력으로 치면 자동차, 핸드폰, IT.. 모든 분야의 기업 위에 있는 최고의 기업이다.



자연스럽게 내 어린 시절, 내가 진짜 사랑하고 많은 시간 함께 하며 같이 웃었던 또 다른 캐릭터들이 떠올랐다. 둘리, 하니, 영심이, 날아라 슈퍼보드, 배추도사 무도사..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는 모르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자라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며 뿌리를 내리고 있는건지.


그들도 캄캄한 기억의 저 편이 아닌, 캘리포니아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디즈니의 캐릭터들처럼 내 일상 속에서 계속해서 마주치고 함께 나이를 먹어갔으면 좋겠다. 강남역 막걸리 집에서 <배추도사 무도사> 컨셉을 만나고, <슈퍼보드>의 수많은 괴물 캐릭터들을 포켓몬고처럼 길거리 증강현실로 마주치고, '달려라 달려라~♪'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하니> <영심이> 퍼레이드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의 지난 날의 추억과 시간들은 일상에서 더 자주 힘을 발휘할 수 있을텐데.



캘리포니아 곳곳에서 월트 디즈니와 마주칠수록

더 간절해지는, 내가 사랑했던 나의 옛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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