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랜드캐니언
세상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여행한다.
내가 서있는 '지금, 여기'의 좌표를 알기 위해 하늘에서 본다. 수많은 건너편에 서 본다.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위>에 빛나는 그랜드캐니언은 지구 상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 중 하나다. 하지만 의외로 관광객의 호불호가 나뉘는 곳이기도 하다.
‘그냥 그랬다. 처음에만 와- 하고 여길 보나 저길 보나 똑같다. 뻔하다. 게티이미지처럼 현실감이 없다.’
그랜드캐니언은 ‘그랜드’라는 형용사를 어떨 때 쓰는 건지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땅이다. 콜로라도강의 침식으로 생겨난 최대 너비 30km, 깊이 1.5km에 달하는 거대한 협곡이 자그마치 445km에 걸쳐 형성돼 있다.
주로 방문하는 사우스림에서 노스림까지의 이동시간만 해도 차로 5시간이다. 때문에 그랜드캐니언을 한 스팟에 멈춰 서서 짧게 휘휘 둘러보는 것으론 그 위용과 실체를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때문에 인기있는 것이 경비행기 혹은 헬기투어다. 약 1시간에 걸쳐 협곡 위를 날아 사우스림에서 노스림으로 크게 원을 그리고 돌아오는 코스다.
붕- 떠오르는 헬기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고원을 날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으로 보였던 경계선이 싹둑- 베어낸 듯 땅이 끝나버린다. 캐니언에 들어선 것이다.
발 밑에 갑작스런 허공뿐인 캐년의 한가운데에 이르면 경악에 가까운 경이감이 몰려온다. 인적도, 역사도, 희노애락도 없는 절대자의 공간이다.
악- 소리와 함께 수돗물같은 눈물이 흘렀다. 감격이나 감동의 눈물이 아니었다. 내 의식이 미처 영문을 깨닫기 전에 시신경이 먼저 반응하고 흘리는 일종의 누수였다. 눈 앞의 충격적인 광경에 비루한 나의 무의식이 지렸다는 표식이었다.
평평한 대지가 뚝 끝나버리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다른 차원의 세계다. 445km에 걸쳐 대륙을 완전히 쪼개어 버리는 경계다. 이 곳에선 ‘땅의 경계’에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눈 앞에 고요한 땅이 있을 뿐인데 경이와 공포가 느껴진다.
땅의 경계
그래서 그랜드캐니언을 제대로 보려면 하늘에서 봐야한다. 너무나 거대해서 어느 한 점에 선 작은 인간에겐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코끼리의 다리, 코, 귀만 보일 뿐 코끼리를 알아 볼 수가 없다.
하늘 위에서 볼 수 없다면 가능한 다양한 시점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이 차선이다. 직접 그 바닥을 하이킹하며 몸으로 부딪혀 본다. 여러 포인트에서 바라본다. 다양한 감각과 정보로 퍼즐을 맞춰 전체를 그린다.
우리의 오늘이 꼭 그렇다.
그랜드캐니언보다 그랜드한 세계는 내가 머물러 있는 자리에서는 도무지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능한 다양한 관점에서, 각각의 부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경험해보고 퍼즐을 맞춰볼 때 어렴풋이 그 실루엣이 드러난다.
내가 지금 이 세상의 어떤 부분에 서있는지, 어디를 향해갈 수 있는지, 어디로 가보고 싶은지 적어도 내 건너편에는 서봐야 알아볼 수 있다. 그러지 않고는 죽기전에 가봐야 할 명소 1위에서 조차 뻔해서 더 이상 볼 게 없다고 느끼는 세상이 눈 앞에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여행하는 이유다.
[그랜드캐니언]
미국 애리조나주 콜로라도강 유역을 따라 형성된 장엄한 협곡이다. 연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국립공원이며,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주로 협곡 남쪽의 사우스림을 방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