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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주 May 10. 2022

초록색만 보면 심장이 뜁니다

초여름이나 유월 따위의 말은 묘하게 사람을 설레게 한다. 눈앞에 싱그러운 풀밭이 펼쳐지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반투명 재질의 흰 커튼이 눈앞에서 살랑거릴 것 같다. 언젠가 묵었던 제주도의 에어비앤비가 그랬던가. 아. 최근에 갔던 힙했던 미용실 인테리어도 이런 식이 었던 것 같다.


여름은 여러모로 좋다. 추운 것을 싫어하는 신랑이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하고 첫째가 좋아하는 모래놀이도 실컷 할 수도 있다.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가도 발가락이 안전하고 머리카락에 물이 뚝뚝 떨어져도 적당한 바람에 털어낼 수 있다. 어깨에 툭툭. 젖어도 상관없다. 시원하니까.


여름이 되면 좀 느슨해지고 싶다. 실팔찌 같은 거도 감아주고 싶고 히피펌을 해서 자유로운 영혼 비슷한 흉내도 내고 싶다. 서핑을 끝내고 허름한 샤워실에서 나와서  맥주를 먹는 분이랄까. 에센셜의 플레이리스트에서 chill이 들어간 걸 고르면 딱일 것 같다.


지금은 아이를 보며 초여름을 흠뻑 느낀다. 흔들 그네에 누워 바이킹을 태워달라던 아이의 얼굴로 햇빛이 비친다. 동글동글 구슬같이 빛나는 햇빛이 어른거리고. 아이는 눈을 찡그렸다가도 이내 환히 웃는다. 나는 품에 아이를 가두고 싱그럽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너를 정말 정말 사랑해. 너는 참 싱그러워.


아파트 곳곳에도 초록이 물들었다. 정문 앞동에 사시는 할머니는 아파트 화단을 정원처럼 가꾸고 계신데 얼마 전 말을 걸어본 적이 있다. 단풍나무가 죽고 베어진 자리가 쓸쓸하고 버려질 것 같아 3년 동안 산에서 흙을 퍼 날라 정원을 가꾸셨다 했다. 할머니의 정원에는 작약과 장미, 이름 모를 꽃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할머니의 얼굴이 싱그럽게 변했다.


"작년에 심어놓은 꽃들도 나왔어요."


할머니의 정원. 작고 소중한 장미꽃


언젠가부터 나의 계절은 아이에게 양보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제 그토록 싱그러운 아이의 얼굴을 보니 되려 내가 아이에게 계절을 선물 받는 기분이 든다. 적당히 그을려 가무잡잡해진 아이를 끌어안고 올여름도 신나게 놀아보자고 다짐한다. 초록이 짙어져 눈이 쨍해질 때까지. 너의 목 뒷덜미가 더 까매질 때까지. 우리의 여름을 즐기고 사랑하자. 나의 여름은 벌써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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