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온 지난 상담 이후로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생각들을 선생님께 말하고 싶어 들뜬 마음으로 상담실을 찾았다.
“선생님, 전 사실 명랑한 사람인 거 같아요.”
“명랑함이라고 하니 빨강머리 앤이 떠오르네요. 저는 빨강머리 앤이야 말로 즐거움, 슬픔 등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면 상대가 힘들지 않을까요?"
“표현하는 것과 표출하는 것은 다르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곧 표출이라고 생각했는데 ’표현한다‘는 좀 더 언어적인 것이고, ‘표출한다’는 비언어적인 것이라 말씀해 주셨다. 상담을 하면서 줄곧 느낀 바지만 우리말이 너무 어렵다. 어렵다 못해 참으로 낯설다.
“어떤 단어든 판단과 호불호가 반영되기 나름인데 사회적 언어이기에 어쩔 수 없어요. 나방님만의 언어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가져보면 돼요.”
“상담을 시작한 이후로 유아기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요. 단어 하나하나가 주는 의미를 새로이 깨닫고 있달까요."
“상담이 그런 거예요. 사회적 언어를 나만의 언어로 만들어 가는 거죠. 사회적으로 부정적이라 여기는 단어를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 문제가 아니에요. 그 의미를 다시 나만의 언어로 찾아가면 되는 거예요."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알아차림’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단어나 개념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 줄곧 잠자고 있던 것들이 두드림에 의해 알아차림을 당한 것. 요즘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일이 늘었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기 전 내가 쓰고자 하는 정확한 표현이 맞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 의미가 달라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거의 나는 스스로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살아가는 존재였을까? 표현이 부적확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전환하기
누구나 비교평가를 해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비교하고 평가하고 좌절하고 우울해하고. 나는 늘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왔던 것 같다. 내가 처한 상황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감정.
"전환하기가 중요해요. 비교평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어떤 환경에서 더 역량이 잘 발휘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거죠."
선생님은 스스로를 3인칭화 시켜서 전환을 연습해 보라 하셨다. 그리고 이 연습은 어려운 게 맞다는 말씀.
다시, 명랑함으로 돌아와서
"모든 것은 선택하는 것이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면 돼요. 나방님이 명랑함을 선택했다면 회사에서는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다는 그런 마음이요."
"회사는 차분한 사람을 원한다고 생각해서 차분하고 이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진 명랑함을 감춰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적응하지 못하고 튀어버릴까 봐요. 흠이 없는 선택을 하고 싶었나 봐요."
"회사가 왜 네모를 원한다고 생각해요? 잘 찾아보면 동그란 사람도 뾰족한 사람도 회사에 잘 적응하며 다니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방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나의 무대' 위로 올려두지 마세요. 그들은 지나가는 엑스트라 1 정도예요. 내 무대에는 나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 올리는 거예요."
'회사에서 적을 만들지 말아라.'
'회사에서 표정관리를 잘해야 한다.'
'회사에서 감정을 쉽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
줄곧 주변에서 들어온 말들이 내게 '회사생활은 ~해야 한다.'는 명제가 되었다. 이를 잘 실행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라 여겨 힘들어하는 게 아닐까. 조금은 명랑하고 감정 표현을 잘하는 직장인도 있을 텐데, 그리고 이런 사람 모두가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 땅의 모든 존재를 안을 만큼 긴 팔을 가진 존재는 없다.' 하루키의 글이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