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물리적 환경의 변화를 주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들에게서 멀어지고자 자리를 옮겼다. 갑자기 자리를 옮겨 다들 의아해했지만 새삼 놀라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고작 자리만 옮긴 것뿐인데 내 마음속에 엄청난 희망이 생겼다.
“선생님, 지난주에는 나름대로 큰 용기를 냈어요. “
“무슨 용기를 냈을까요?”
“제가 그어둔 선을 훌쩍 넘어오는 팀원들이 있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휘둘리고 있었는데 자리를 옮겨서 물리적인 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갑자기 자리를 옮겨서 다들 의아해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당황해하기도 했지만 제가 편해지고 싶었어요. “
“굉장히 큰 용기를 냈군요! “
선생님은 내가 만든 용기에 대한 칭찬과 더불어 ‘힘든 것을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무게감을 덜어내고 조금 명랑하게 살자는 말.
힘든걸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힘든걸 너무 많이 힘들어하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모든 시선과 신경이 그 일로 향한다. 그리고 내 세계는 온전히 힘든 사실로 도배되며 그로 인해 내가 더 괴로워지는 상황을 자주 연출하곤 했다. 대체 나는 왜 그러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나여서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인공이니까. 그래서 내가 겪는 일은 내 이야기 속 사건의 핵심이고 전부였다. 그 일이 해결되어야 끝나는 소설이었다. 분명 시작은 100g의 무게였는데 덕지덕지 나의 근심 걱정을 붙이다 보니 어느덧 10kg가 훌쩍 넘어버리는 것. 사건을 해결하려면 10kg도 100g으로 만드는 다이어트가 필요한데 말이다.
그래서 조금은 무게감을 덜어내 보기로 했다.
“예전보다 나방님에게서 팀원들의 위치가 조금 내려간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나의 변화를 세심하게 알아차려주시곤 하는데 이 말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들이 내게서 조금은 별 것 아닌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
“그들을 호랑이가 아니라 날파리 정도로 생각해 보세요. 날파리를 없애려고 노력하지만 죽여도 늘 생겨나지 않나요? “
날파리라니! 너무나도 우스운 비유였고 찰떡같은 설명이었다. 내게서 우선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 그리고 완전히 없애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완전 박멸을 꿈꾸지만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이 날파리니까.
“저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아요. “
“괜찮아요. 우리는 여름 내내 모기와 파리 때문에 괴로워하잖아요? 이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하나도 안 쓸 수는 없어요. 어쩔 수 없이 일정량의 에너지는 쓴다고 생각해야 해요. 내가 받는 월급에 그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도 포함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
근로계약상 업무 범위에 들어가는 내용이라 생각하니 대가를 받고 행하는 계약사항 정도로 사안이 가벼워졌다.
‘나는 그저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