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하노이에 있는 스핑크스의 밤
하노이 3일차
7월 6일 토요일, 아침 5시
너무 일찍 눈을 떴다.
발코니로 나가보니 구름 너머로 태양이 차오른다.
어제 먹은 술 때문인지 계속 입맛을 다셔야 했다.
해장이 필요했다.
어제 벗어놓은 옷들을 정리하다가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다.
그것은 머리핀이었다.
어제 가라오케에서 만난 친구, 엠린의 것이었다.
함께 술을 마시다가 엠린이 자신의 머리핀을 내 머리에 꽂아 주며 웃었던 기억이 났다. 미친놈처럼 머리에 핀 꼽고 술을 마시더니 어쩌다 이 머리핀을 내가 가져온 모양이다.
내 물건이 아닌 것.
처음 본 물건에 코를 킁킁거리는 강아지처럼 코가 먼저 다가간다.
머리핀에서 느껴지는 타인의 향기.
향기와 함께 어제 일들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은 좋은 향기와 함께 기억된다.
좋은 향기를 지닌 사람이라면 더더욱,
설사 그 사람이 시야에서 멀어져도 그 향기는 오래 남는다.
초이와 함께 해장을 하러 23층 레스토랑으로 올라갔다.
조식을 두 접시 먹고 계란프라이 4개를 먹었더니 속이 가라앉는다. 초이는 쌀국수와 따뜻한 커피를 번갈아가며 들이켰다. 해장을 하면서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소주가 아니라 보드카를 마셔야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뜬금없는 다짐이다)
아침 7시,
다시 강렬해지는 하노이의 뙤약볕이다.
오늘은 인피니티 풀에 그 한국인 여성이 없다.
이번엔 진짜 나 홀로 수영장!
(히토리 데스!)
다시 객실로 들어와서 원고 작업,
미쳤구나!
놀러 와서 왜 이렇게 바른생활을?!
사실 하노이에 있으면서 나의 오전 일정은 '조식-수영-원고작업'의 반복이었다.
다음 날도 그랬다.
4일 동안 하노이에 머물면서 느낀 것이지만,
남은 인생을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오늘 점심은 규성이와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는 퓨전 스타일의 베트남 음식점으로 갔다.
음식점 이름은 'Phố Ngon 37'.
규모가 매우 큰 음식점인데,
우리가 오후 2시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와서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었다.
오늘은 사이공 맥주로 시작!
베트남의 맥주 캔은 상당히 작다.
우리나라로 치면 콜라 캔 정도의 사이즈.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있으니
우리가 주문한 음식들이 차례대로 나온다.
너무 맛있게 먹느라 음식 사진을 전부 못 찍었다.
(볶음밥 사진을 빼먹었네;)
신기한 것은 가장 맛없게 생긴 모닝글로리가 의외로 맛있었다는 점!
점심을 먹고 나른해지자, 규성이가 조금 특별한 장소를 추천해 주었다. 그곳은 바로 마사지숍.
우리가 갈 곳은 일반적인 마사지숍이 아니라 아파트 안에 숨어 있는 특별한 마사지숍이라고 한다. 이렇게만 설명한다면 퇴폐 마사지를 떠올리기 십상인데, 그게 아니라 아는 사람들만 티켓 끊고 갈 수 있다는 멤버십 마시지 숍이다. 사실은 규성이의 와이프가 애용하는 곳인데 우리를 위해 특별히 티켓 몇 장을 제공해 주셨다고 한다.
(와이프 몰래 가져온 건 아니겠지?)
아무튼 그 은밀한 장소로 이동!
여기도 뭔가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부촌인 것 같다.
아파트의 외관이 예사롭지 않다.
지나다니는 입주민들은 거의 한국인이었다.
아파트 입구부터 아무나 들어갈 수 없게 통제되어 있었다.
아파트의 안쪽 모습.
넓은 수영장이 보인다.
드디어 마사지숍에 도착!
마사지숍으로 들어서자 베트남 여성이 대기할 수 있는 자리로 안내해 줬다. 자리에 앉자마자 애프터눈 티의 3단 스탠드가 보였는데, 대부분 사탕이었다.
하나를 꺼내 먹었는데 기분이 묘한 맛이었다. 갑자기 규성이가 뱉으라고 했다. 베트남에서 함부로 사탕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태국에 가면 마약 성분이 들어간 사탕이 많아서 조심하라고 했는데,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한 시간 정도 마사지를 받고 나서 근처에 있는 K-MARKET(한인마트?)를 구경했다.
거기서 나는 'Men'이라고 하는 보드카를 겟했다.
규성이의 차를 타고 하노이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숍 '콩 카페'로 향했다.
전형적인 하노이 도로 상황,
어느 곳으로 가든 수많은 오토바이 물결을 피할 수는 없다.
자동차 사이에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 사이에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이다.
하노이 도로를 보면 차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신호등도 몇 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노이에 있던 4일 동안 교통사고를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콩카페 맞은편에 있는 성요셉 대성당 앞에서 기념 촬영.
하노이 3일 차가 되니까 오토바이 냄새조차 잘 못 느끼게 되었다. 코까지 적응 완료!
잠시 후,
규성이의 운전기사님이 우리를 태우러 오셨다.
또다시 하노이의 밤을 즐기러 갈 시간.
오늘 밤을 위해 초이가 야심 차게 픽한 곳이다.
그곳은 바로 '뉴 스핑크스 비어 바(New Sphinx Beer Bar)'
하노이에 있는 스핑크스라니, 맥주바치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곳은 단순히 맥주만 파는 곳이 아니라 여러 가지 퍼포먼스가 준비된 곳이다. 베트남 전통 춤으로 시작해서 각종 댄스 공연, 바이올린-색소폰 공연, 그리고 늦은 저녁이 되면 마치 클럽에 온 것처럼 DJ가 흥겨운 음악을 틀어준다.
드디어 베트남에서 보드카를 마셔본다.
이곳에서는 메뉴 소개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안내해 주는 매니저가 존재한다. 매니저와 한 컷!
스테이크 안주를 시키자 우리가 보는 앞에서 고기를 손질해 줬다.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종업원들과 친해져 버렸다. 파파고가 열일했네!
드디어 시작된 뉴 스핑크스 비어바의 퍼포먼스 쇼!
넋 나간 규성이,
앉아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일어나서 사진 찍고 난리도 아니었다.
댄서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던 무대!
그들이 호흡하는 근육의 움직임까지 전달되는 생동감 넘치는 무대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무대가 점점 뜨거워지자, 갑자기 객석으로 긴 풍선이 쏟아져 내려왔다.
나만 춤을 춘 것은 아니었다.
우리 옆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베트남 여성들이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함께 춤을 추었다.
이곳 분위기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보드카에 취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 자유로운 영혼이 언어의 벽을 부수고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춤추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렇게 하노이의 밤이 깊어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