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앙떼, 줄리안
스테판은 나와 재회하게 되었을 때, 휴대폰이 없던 시절, 아주 중요한 소식이 있어서 달려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소식을 전하고 있는 사람처럼 급하게 이런 말을 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들려준 두 아티스트의 각각 3번째 5번째 앨범을 들을 때마다 내 생각을 했었다.’고. 그것도 아프리카 남부에서.
'Bahamas'와 ‘The antlers’였다. 들으면 가슴 찌릿하면서 아랫도리까지 황홀해지는 이 음악들을 들을 때마다 내가 생각난다니, 아주 기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멋진 음악들과 감히 내가 어울린다는 망상까지도 하게 되니 말이다.
그가 덧붙인 말에 의하면 나는 ‘이틀을 보았지만 평생 알아오던 사람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고, 그런 이틀 친구인 내가 폴란드에서 The antlers의 음악을 공중에 흩어지게끔 거슬리지 않는 크기로 틀어놓고는, 연필로 누군가의 잔주름을 한껏 집중해서 그리다가 공용 발코니로 가서 담배를 피웠고, 나를 쫓아 발코니로 왔을 때에는 장난스럽게 이 가사에 입모양을 따라 맞추며 천천히 춤까지 췄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밥이었다는 것은 기억하지만 그게 현미였는지 좁쌀이었는지는 기억을 못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놓고는 누가 ‘그때 그 밥, 흑미밥이었어.’라고 말해서 흑미밥을 맛있게 먹었던 것 같은 착각까지 하게 되었고.
앙떼랑 같은 의미의 문장을 각자의 언어로, 서로에게 가르쳐주었다. 다운이 먼저 큰 소리로 외치지. “Olen onnellinen!” 앙떼도 따라 큰 소리로 외치지. “나 지금 행복해!”
* 내가 코로나19로 인해 요르단에 갇히게 된 비슷한 시기에 앙떼도 우크라이나의 한 산속에 갇혔다. 그곳도 도시 봉쇄가 있었더래서 그도 다른 도시로 이동하지 못했다. 그런 그는 고립 초반 내게 아침마다 메시지를 보냈다.
'좋은 아침! 또 다른 고립으로부터.'
비겁하지만, 지독하게 혼자였던 2개월간 그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런 그는 3개월간의 우크라이나 고립생활을 마무리하고, 며칠 전 우크라이나를 탈출했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선 ㅡ발음도 어려운ㅡ 펍크로우인지 뭔지 ‘술집을 돌아다니며 한 잔의 술만 마시고 다음 술집으로 이동해 또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는 게임 같은 일.’에 참여했었다. 술에 한껏 취한 새벽 4시경에 줄리앙이랑 숙소로 돌아가다가, 낮과는 다른 거리 모습에 길을 잃었고, 아는 간판이 보여 담을 넘기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높은 담에서 뛰어내리려는 순간, 줄리앙이 시선을 내게 고정시킨 채 자연스럽게 내 가방을 받아 자기 목에 걸더니, 기탄없이 양팔을 내쪽으로 뻗었다. 그 짧은 순간이 생생한데, 오대오로 넘긴 긴 금발 머리와 윗 단추 두 개를 푸른 하늘색 남방이 참 잘 어울린단 생각을 했다. 뻗은 양팔에선 수박 맛 껌 향기가 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