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ㅇㅇ님 가족분이실까요. 대출 기한을 넘기셔서 연락드렸어요."
연체자 관리는 도서관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배민에 없는 가게면 굳이 요기요까지 깔아서 음식을 주문하는 마당에 통화가 업무라니. 게다가 빚쟁이도 아니고 독촉 전화라니. 연체자 관리는 전화 공포증이 있는 현대인에게 처음부터 영 껄끄러운 업무였다.
하지만 연체자 관리는 3년에 한 번 있는 감사에 지적되는 단골 레퍼토리였고 이미 전적이 있는 도서관에서 같은 내용으로 지적받는 것은 큰 문제였다. 업무를 맡았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전화기를 붙잡고 독촉 전화를 돌렸다. 전화를 하다 보면 연체자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정말 죄송하다며 주말까지 꼭 반납하겠다고 전화한 내가 미안하리만큼 연신 사과를 하시는 분들께는 "아휴 깜빡하실 수도 있죠. 주말까지 꼭 반납해주세요!"라고 명랑하게 답변을 한다. 반면,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안녕하세요~ㅇㅇ도서관인데요~"까지 말하기가 무섭게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이용자도 있다. 아니, 선거 홍보도 아니고 보험 파는 것도 아닌데요. 서비스용 목소리를 탑재하고 전화를 했건만 나의 내면의 소리를 읽어버린 것인가 싶어서 괜스레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음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그렇게 매몰차게 끊었더라도 며칠 후에 반납함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전화로 문전박대당한 기분이 조금은 풀린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당시 근무하는 도서관에서는 이용자 가입을 할 때 휴대전화로 연락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서 집전화나 가족 연락처를 받아놓았다. 학생들의 경우 전화를 꺼놓는 시간이 많아 가족에게 연락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런 흔한 날 중 하루였다. 여느 때와 같이 '안녕하세요. ㅇㅇ도서관입니다. ㅇㅇ님 책이 연체되셔서 전화드렸어요~'라고 말하자 "연체요?? ㅇㅇ이가요??"라는 지긋한 여성분 목소리가 들렸다. 아! 오해하셨구나 싶어서 바로 덧붙였다. "아. 그게 아니고 책을 대출을 하셨는데...", "네? ㅇㅇ이가 대출을요?" "아니요. 아뇨!! 그게 아니라!" 할머니는 갑자기 손자가 대출을 하고 연체를 했다니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전화를 하며 말이 긴 이용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반납하겠다고 한 마디만 하셔도 될 텐데, 죄송하다며 어디 어디 장기 여행을 다녀왔다든지 둘째를 출산을 해서 경황이 없었다든지 하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신다. 이용자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반납이 늦었다며 나름대로 늘어놓는 변명이지만 나는 조금 심술 맞은 구석이 있어서 이게 꼭 남의 SNS나 블로그를 훔쳐보는 것 같이 흥미롭다. (물론, 내향형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사연을 들어도 '즐거우셨겠어요~' 라거나 '축하드려요~' 같은 리액션은 절대로 하지 못했다.)
연체자 관리 업무는 보통 도서관 막내가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차가 찬 지금은 그 업무에서 벗어났다. 그때는 좋아하지 않는 업무였는데 지금껏 이렇게 생각나는 에피소드들을 나열해보자니 내가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앱 주문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역시 추억은 미화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