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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화 Aug 25. 2016

징하게 맞는 소리

 _명언

영화 <어거스트 : 가족의 초상>의 첫 장면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생은... 매우 길다. T.S.엘리엇' 

그 말을 처음 한 것도, 처음 생각한 것도 아닌데 빛은 혼자 다 보지. 글로 적었으니까.

이젠 그 말을 할 땐 꼭 이름을 붙여야 해. 인생은 매우 길다. T.S.엘리엇. 

징하게 맞는 소리지."


몇 달 전, 한 이벤트에 사연을 써 신청했는데 당첨됐다. 등받이에 아빠의 메시지를 새겨주는 앙증맞은 유아의자였다. 아이의 의자이지만 오히려 아빠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첨자가 단 1명이라기에 설마 내가 될까 싶었는데 뽑힌 거다. 신이 나서 주소를 입력하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생각해보라 했다. 그런데 이 한 줄짜리 메시지를 쓰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남편은 졸지에 숙제를 떠안게 됐다. 

“길게 편지를 쓰라면 쓰겠는데, 한 줄을 쓰려고 하니 더 어렵네. 읽었을 때 뭔가 확 와 닿게 쓰고 싶은데.”

나도 함께 생각해보았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그 누구라도 이 한 줄만 읽으면 ‘아!’ 하고 가슴이 찡해지는 글. 

그게 아니라면 감성적인 사람의 눈시울을 살짝 붉힐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하지만 그런 임팩트 있는 한 줄을

만들어내는 건 만만치 않았다. 우린 인터넷의 힘을 빌려 보기로 했다. 검색어 [명언]


‘네 자식들이 해 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네 부모에게 행하라. 소크라테스.’ 

“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명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건 죽음과 세금뿐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노력할수록 행운이 온다. 토머스 제퍼슨.’ 

징하게 맞는 소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로버트 엘리엇’  

‘불가능이란 없다. 나폴레옹’


아니요, 이런 거 말고....... 

갑자기 학생시절 칠판 위에 붙어있던 급훈이 생각난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이거 셋 중의 하나는 꼭 있었을 거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다.’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급훈을 올려다보며 “그래서 뭐, 어쩌라고”를 연발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한참을 생각하게 만드는 명언도 있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하라. 니체.”

와, 니체는 이름도 폼 나는데 참 말도 멋있게 했구나.


나는 이것저것 남편에게 들이댔다. 

‘꿈을 크게 꿔라. 깨져도 그 조각이 크다.’ 이거 어때? 

“너무 거창한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을 넘어야 다음 문이 열린다.’ 이거는? 김연아가 한 말이래.

“아닌 것 같아...”


한참을 고민하던 남편은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막 멋지게 꾸민 말보다는 그냥 이렇게 쓰고 싶다 했다.

“네가 힘들 때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될게.” 


음... 너무 평범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웬걸. 혼자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보니 뭔가 울렁임이 있다. 

나는 이 메시지로 의자를 신청했다. 아 맞다. 이런 멋진 말을 글로 쓸 땐 꼭 이름을 붙여야지!

“널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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