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법정 예찬

시작하는 글

by 장미화


자주 법정 스님이 생각난다. 글을 쓸 때는 한 단어라도 법정 스님 흉내를 내고 싶어진다. 다른 이의 글을 읽을 때도 법정 스님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 신기하다, 하며 본다. 내가 불교 신자인가 하면 아니다. 법정의 무소유를 수집하는 열혈팬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토록 법정을 예찬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근 일 년간 내가 읽은 책이란 게
법정 스님 책 달랑 한 권이어서다.


낯선 도시 이스탄불로 떠나오면서 서가에 꽂힌 책 중 내가 빼들고 온 단 한 권의 책. 법정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였다. 그 책을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 불안한 마음을 큰 인물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나는 곰탕을 우리듯이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읽을 책이 그거 한 권이었다. 이스탄불 도착한지 두 달 만에 컨테이너 짐을 받았으나 두 아이의 책 박스를 풀어 모두 꽂고 나니 어른 책 꽂을 여유가 없었다. 책장을 하나 더 마련해야겠어 하고는 미루게 되니, 책 좀 읽어볼까 하고 앉으면 역시 손에 들려있는 건 그 책인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이 책은 읽어도 읽어도 새로운 것이 아닌가? 다 읽었으니 휙 하니 던져지는 그런 책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감동적인 글귀에 밑줄을 그어놓고 그 부분만 죽 읽다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리내어 읽어보니 목이 탁 멨다. 아무리 독서가 중요하다지마는 무조건 다독하는 것보다 좋은 책을 닳도록 읽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

출판업자에게 나같은 사람은 아주 최악일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깊이 감동했던 페이지를 다시 펼쳐 본다.


누가 물었다.
스님은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오늘을 살고 있을 뿐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다음 순간을, 내일 일을
누가 알 수 있는가.

학명 선사는 읊었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라.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라,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새해를 희망차게 받아들이고 싶은 이에겐 이 글이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기껏 카운트다운하고 '해피 뉴 이어!' 외쳤더니만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라니.

새해 첫 페이지부터 웬 기운 빠지는 소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래에 딱히 그 어떤 기대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 뿐이라는 말이 오히려 파이팅 넘치게 들린다. 사실 새해에도 묵은해에 겪었던 딱 그 정도 행복할 것이며 딱 그 정도 슬플지도 모른다. 다만 조금이라도 나은 내가 되어 더 작은 행복에도 감동하고 더 큰 슬픔에도 담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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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