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미화 Aug 31. 2016

곁에 있는 사람한테나 잘하세요

 _가족


그 애는 정말 착했다. 특히 어른들에게 참 잘했다. 

그 애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싹싹하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난 물었다. 

“넌 어쩜 그렇게 아빠한테 잘해?”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냐? 울아빠는 나한테 더 잘하는 걸?”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는 적어도 ‘효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식의 대답을 예상했다. 


하루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 세상에 너처럼 할머니 챙기는 사람은 처음이야” 


뒤따라온 그의 대답은 위와 같은 논리였다. 

“몰라서 하는 소리야. 오히려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챙기는데”


그 짧은 말이 어떤 충고보다도 더 강하게 마음을 쳤다.

우리 가족도 나한테 진짜 잘하는데. 아니, 사실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전 받들 듯 하는데도 

난 따뜻한 말 한마디 한 기억이 드물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다. 예전에 공익광고에서도 본 적이 있다. 

남에게는 잘 하는데 정작 가족에겐 싸늘한 사람들. 


생각해보면 가족에게 잘 해당되지 않는 논리가 이 친구에겐 작용하고 있었다. 

가족에게 받은 걸 고마워하는 그 지점이 시작점인 것 같다. 


‘내가 이만큼 받았는데 고마워서 나도...’


의외로 가족에겐 쉽사리 생기지 않는 마음이다. 

바로 그 마음이 이 친구를 싹싹하고 참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남에겐 하나 받으면 어떻게든 그 하나를 돌려주고 싶고, 두 개 받기 시작하면 너무 고마워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에이 그건 생판 남이니까 그렇고, 가족끼리 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이런 식으로 밀려나다가는 가족이 설 자리가 없을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내가 목격한 이런 사건처럼. 


크게 다툰 부부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은 경보대회라도 하듯 팽팽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아내의 눈빛으로 봐선 금방이라도 달려가 후려갈길 듯 했다. 그 때 고양이 한 마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슥 지나간다. 아내는 깜짝 놀라 자지러졌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남편이 말했다. 


“오구 불쌍한 것... 밥은 먹고 다니려나.” 


그녀는 폭발했다. 


“이런 xx! 니 마누라한테나 잘하세요!!!!” 


남편은 선량한 ‘측은지심’에 왜 시비냐고 받아쳤다. 싸움은 2차전에 돌입했다. 

그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고양이는 

어느 착한 사람이 매일 챙겨주는 사료를 아구아구 먹고 있었다나. 


가족에겐 왜 측은지심이 잘 발동이 안 될까? 물론 사람마다 다를 거다. 

나 같은 경우는 내 구미에 맞게 그들을 변화시키고 싶은 욕망 때문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그 욕망은 더욱 커져서 사감선생님 마냥 가족들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조금이라도 맘에 안 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게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그렇게 했다. 

몇 달 전, 엄마와 통화를 할 때였다. 


엄마가 말했다.

 “참! 너 시아버지한테 잘해 드려. 니 아빠한테 하듯 하지 말고. 알았냐?” 


전화를 끊고 난 한동안 멍했다. 솔직히 엄마 말이 충격이었다. 

내가 아빠한테 어떻게 하는데? 내가 아빠한테 하는 뼈 있는 말들도 다 아빠를 사랑해서 하는 건데. 

엄마는 아빠 욕 할 땐 언제고 꼭 결정적인 순간에 편든다니까!


혼자서 ‘참, 나, 원’을 연발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봤다. 그리고 남편에게 물어봤다. 

“내가 아빠한테 화를 많이 내는 것 같아?”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몰라서 묻는 거야?” 

“오빠는 몰라. 나랑 아빠가 어떤 사이인지!”


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빠랑 내가 어떤 사이인지 너무도 잘 아는 내가, 아빠한테 잘못한 게 참 많다.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완벽한 이해 없이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를 완벽하게 이해해서가 아닐 것이다. 


우리아빠, 우리엄마, 내형제, 내 남편, 내 아내, 내 딸, 내 아들.

우리는 이들을 사랑한다. 내 입으로는 욕해도 막상 남이 욕하면 가서 때려준다. 


정말이지 죽었다 깨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면이 있을 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한다.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한데 가족에겐 얄짤없다면? 누가 봐도 그런 사람 정말 별로다. 먼저 내 곁에 있는 사람들부터 살뜰히 돌보고, 그 다음에 착한 일도 했으면 좋겠다. 

가족과 내가 어떤 사이인지는, 나 자신이 제일 잘 아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이구, 이 답답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