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벗었지만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아
여행지에서 현장 드로잉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워낙에 걷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생각만큼 많이 못 그렸다.
챙겨 간 드로잉 수첩 꽉꽉 채워 그리고 싶었는데 숙소에 와서는 매일 밤 음주가무를 즐기며 노느라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었다.
삼자: 밤에는 놀아야지!
내가 묵었던 호텔은 창문을 열면 바다는 하나도 안 보였지만 3박 4일간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던 곳이다.
사실 난 이번 여행에서 다른 어떤 곳보다 호텔에서 있었던 시간이 가장 좋았다.
매일 밤마다 혼자 벌거벗고 아무 데나 옷을 던졌다. 정리 따위 안 했다. 옷을 한 번 벗으니 편했다. 혼자 살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던 나, 옷 벗고 자유로이 돌아다녀 본 게 첨이다. 제주 숙소에서 난생처음 해방감을 맛봤다.
밥도 아무 때나 먹고 싶을 때 먹었고 먹기 싫음 안먹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눈을 떴다. 세수도 안 했고 화장도 안 했다. 으아아, 눈썹이 없어도 너무 신이 나.
강박아, 불안아!
이 언니가 지금 너무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싶다.
불안이: 괜찮을까?
강박이:옷은 좀 입었으면...
삼자: 늬들 초치지 말고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