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 탐방로 입구에 있는 사려니 숲에 관한 설명글을 읽었다. 이렇게 멋진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이 누굴까. 괜히 궁금해진다.
‘사려니’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숲길을 꼭 걸어볼 테야. 게다가 뜻도 ‘신성한 곳’이라니. 신성한 기운 듬뿍 받아 돌아가리라.
불안이:숲은 위험하지 않을까.
삼자:괜찮아, 요기조기 사람도 많구먼
강박:요즘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거 몰라?
삼자:그러려면 그냥 집에나 있어야지. 뭐하러 돌아다니냐
등엔 커다란 백팩, 어깨엔 크로스백
먹고 남은 간식이랑(캔맥주 2캔) 제주도에서 산 책들과 기념품들이 더해져
나의 가방은 터져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왼쪽 손엔 검정 봉지와 오른쪽 손엔 커다란 쇼핑백(제주도산 초콜릿이 3박스나 들어있다.)
오리털 파커 안에 니트 조끼와 티셔츠 내복까지 몽땅 껴입고 걷고 있는 나. 땀이 뻘뻘.
한 마리의 뚱뚱한 곰이 자기 몸보다 더 큰 가방을 등짝에 매달고 물건을 잔뜩이고 지고 걷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보시라.
내 옆으로 걷는 사람들의 손엔 그 흔한 손가방 하나 없다. 그들은 가뿐히 숲길을 걷고 있다. 가방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삼자: 바보야. 다른 사람들은 차를 타고 왔잖아.
나: 아... 그렇구나 나만 뚜벅이인 건가.
모든 눈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다.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한 시간은 족히 걸었다.
이대로 물러 설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런데 어깨가 빠질 것 같아. 이대로 나 숲길에서 쓰러지는 거 아닐까?
불안이:이만하면 됐어. 그만 걸어라는 말을 넌 듣고 싶었겠지?
강박:여기서 물러서지 말고 더 걸어.
나: 강박아, 나 힘들어. 잉잉. 좀 봐주라.
삼자: 너 그림 여행 왔잖아.
난 그대로 바닥에 풀썩 앉았다.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하필 가방 멘 밑바닥에 그림 도구가 있다니.
물건을 모두 꺼낸 후에 스케치북이랑 필통을 간신히 찾아 근처 돌 위에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