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호지방이 Jul 07. 2024

뒤통수학 개론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는 일이 잦은 요즘이다.

 누군가의 뒤통수를 오래 보고 있으면 뒷모습만 봐도 무슨 표정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이 생긴다. 까만 뒤통수에 눈 코입이 생기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해리포터의 퀴렐교수일지도.

 메가폰을 잡고 있는 J군의 뒤통수는 너무 외롭다. 최근에 바짝 자른 투블럭 머리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그가 테이크를 한 번씩 더 갈 때마다 주변의 술렁이는 소리가 그의 헤드폰을 뚫고 들어온다. 원망하는 소리가 안 들릴 리 없건만 그는 애써 무시한다. 그럴 때 즈음 J군의 뒤통수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외롭다. 외롭기 그지없구나. 무시하고 가자니 연기가 맘에 안 들고, 다시 가자니 촉박한 시간이 눈에 밟힌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한 번 더 테이크를 가야겠다. 이런 목소리랄까. 촉박한 시간에 테이크를 고집하는 건 그의 용기다. 그의 말에 거역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의 맘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그 용기가 객기가 되지 않길 나는 그저 바랄 뿐.


 스크립을 하고 있는 L양의 뒤통수는 잔뜩 성이 나있다. 농부들이나 쓸 법한 거대한 밀짚모자로 중무장한 그녀의 뒷모습에 성난 아우라가 일렁인다. 열을 딴딴히 받은 아스팔트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꽤나 어울리기도……. 무튼. 날은 덥고. 연결은 안 맞고. 더블액션은 튀고. 무엇보다 L양은 이런 것들에 무심한 A군을 이해할 수 없다. 이딴 그림이 편집실로 넘어가면 고스란히 그녀에게 질문 폭탄이 쏟아질 터다. 왜 항상 현장의 안일함이 후반 스태프의 부담이 되어야 하나? 그녀가 투덜거리는 건 단지 감독이 테이크를 한번 더 갔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무지가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그 바로 옆에는 모니터 주변을 오줌 마려운 똥개처럼 서성거리는 조연출 K군이 있다. 그의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건 초조함이다. 미친 감독이 디자인 컨펌을 하나도 해주지 않는다. 당장 오늘엔 컨펌이 나야 이틀 뒤 촬영 스케줄에 맞춰 소품을 준비할 수 있는데, 이놈의 감독은 도무지 말을 들어 처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슛이 잠깐 멈췄을 때 소품을 들이밀어도 보는 둥 마는 둥. 모니터 옆에서 스크립을 하는 L양과만 얘길 나눈다. 도대체 저 인간들은 매일 붙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는가? 뭐가 급한지 모르는가?라고 반문하는 듯한 초조한 뒤통수.

 이 정도면 뒤통수학 개론 교수는 아니더라도 조교까지는 무난히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세트 뒤에 짱 박혀 몰래 이런 글이나 싸지르는 내 뒤통수에서는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지. 하지만 나는 항상 맨 뒤에 앉아 있기 때문에 누가 날 볼 일은 분명 없을게다.

(*끝)

작가의 이전글 미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