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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축구 May 16. 2020

2-7.서른, 축구하기로 결심하다.

환청

아르헨티나에 온지 어느새 한달은 훌쩍지나 두달째를 향하고 있었다. 팀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온 아르헨티나인데, 꼭 "축구선수"라는 꿈을 이루고 돌아가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공허한 다짐뿐 이었다. 스페인어를 전혀 하지 못하니 어디가서 물어볼 곳이 생겨도 언어라는 장벽이 날 가로 막았다. 그나마 할 줄아는 영어는 여기선 무용지물 이었다. 그런 와중에 예상치 못했던 아픔이 시작 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이 시작됐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하늘


처음엔 몸살기가 있는가 싶어 몸살약을 사먹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또한 통상 몸살과 동반되는 오한이나 발열 그리고 인후통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걷기 힘들정도로 어지러웠고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밥을 챙겨먹을 정신도 없어져 굶다시피 했고, 아침에 숙소에서 주는 커피와 빵만 간간히 먹었다. 한인교회 권사님의 도움으로 아르헨티나 병원에 가봤지만 속시원한 처방을 받지 못했다.


아르헨티나 병원은 외국인에게도 무상 의료를 지원한다. 언뜻 듣기엔 좋아보이지만 공짜는 공짜인데 이유가 있다. 증상이 더 심해져 고액의 진료비가 들지만, 한인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거기서도 딱히 그 어떤 처방을 내려주진 못했다. 다만 뇌수막염이 의심된다는 소견서를 스페인어로 써줬다.


그 쪽지를 들고 아르헨티나 병원으로 가보란다..한국에 있는 의사인 친구에게도 같은 의견을 들었다. 


'바이러스성 뇌수막염'


딱히 방법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버티는 수밖에.


밤엔 숙소에서 잠을 설치고 낮엔 그냥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누워있는게 내 일과의 전부였다. 약 2~3주간 나는 반 시체상태였다. 집에는 연락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지구반대편이라 걱정하시는 부모님에게 걱정을 더해 드릴수는 없었다.

오른쪽 난장판인 침대가 내 침대, 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아파서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환청이 들렸다. 


한국에 있을때 난 곧잘 마루에서 들리는 어머니 아버지의 대화소리와 티비 소리에 잠이 깨곤했다. 아르헨티나 작은 침대에서 한국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환청을 들었다.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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