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처작주 입처개진
회의감이 가득했다.
이런 축구를 하자고 기를쓰고 여기까지 왔나..? 서울대에 갔으면 달랐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런 생각이 가득한데 설상가상으로 내 꿈이나 목표가 '교사'가 아니니, 학교가 싫어졌다. 내가 이런 상황을 버텨야 할 어떤 이유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썼다.
왜 이런 축구를 하지? 축구를 왜 고행처럼 하지?
이런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강한 군기속에 교원대 축구부 수준이 높은것도 아니었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겸비한 선배들 동기들도 있었지만, 그저 체육교육과의 학생으로서 '의무'였기 때문에 하는 동문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무어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해서도 안됐다. 그들은 '체육교사'를 꿈꾸고 이 학교에 왔고 '교사'는 한국교원대학교의 설립 취지 이기 때문이다.
다른건 몰라도 축구는 열심히했다. 춘계대학연맹전에 나가고 싶었고 뛰고싶었다.
'1학년에게는 왠만해서는 출전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라고 들었지만, 그래도 뛰고싶었다. 거의 전무하다싶이 한 학교의 지원과 동문들의 후원, 그리고 개인 사비로만 대회를 치러야 했다. 숙소값을 아끼기 위해 청주에 위치한 학교에서 대회가 열리는 광양까지 왕복 8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학교버스로 왔다갔다 해야했다. 음료와 물을 챙기고, 혹시모를 부상에 대비한 의료함 챙기기 등 잡일은 전부 1학년이 맡아 했다.
그래도 뛰고싶었다. 잡일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뛸 수만 있다면.
예선 세 경기중 단 몇분이라도 그라운드 위에 설수만 있다면..
이제와 솔직히 말하면 주전으로 나가는 선배들중 어떻게 봐도 나보다 축구실력이 좋지 않는 선배들도 몇 있었다. 학번 순으로 234학년이 뛰는 문화가 있었다. 이런 문화가 너무 싫었다.
이런 생각들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다. 이런 잡념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을때, 우연히 집어든 '좋은생각'이라는 작은 잡지에서 내 뒷통수를 때리는 문구를 읽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네가 서있는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이니 자기가 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주인이 되라'
라는 글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한국교원대학교 '축구부 주장' 이 되어 축구부를 바꿔보리라 다짐했다.